-GAC와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설립
중국 화웨이가 자동차에 진출하는 방식은 크게 4가지다. 첫째는 필요한 부품 공급 역할이다. 두 번째는 화웨이 인사이드(HI)로 불리는 스마트카 기술 제공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설계 및 디자인 단계부터 통합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개발된 차는 공급사의 별도 브랜드로 판매된다. 그런데 최근 네 번째 방식인 합작 주도를 도입했다. 광저우자동차와 협력해 프리미엄 브랜드 ‘치징(Qijing)’을 내놓기로 했다.
외형상으로는 협업이지만 엄밀히 보면 화웨이가 자동차 두뇌를 만들고 광저우자동차는 그에 걸맞은 하드웨어를 맡는 방식이다. 그리고 둘 가운데 사업의 주도권은 화웨이가 갖는다. 화웨이가 개발 및 판매에 적극 관여하고 광저우자동차는 생산 역할일 뿐이다. 일본의 소니와 혼다, 타이완의 샤프와 폭스콘 관계와 비슷하다. 서서히 지능형 자동차 기업으로 변모하겠다는 욕심을 감추지 않는다. 그들 입장에서 지능형 전기차는 IT 부문 가치 사슬의 확대일 뿐이다.
치징을 내놓으면 화웨이는 당당히 기존 자동차회사의 경쟁사가 된다. 특히 프리미엄 전기차 부문에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욕망이다. 이 경우 경쟁사는 화웨이의 부품 공급을 중단시키는 게 일반적인 절차다. 하지만 그렇게 못한다. 중국 내 대부분 자동차회사의 화웨이 의존율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이미 자동차 개발 주도권이 화웨이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실제 여러 완성차 생산 공장이 화웨이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아우성(?)이다. 과거 한 차례 중단됐던 광저우자동차와 화웨이의 협업 과정 또한 광저우자동차가 개발 주도권마저 화웨이에 내주며 다시 손을 잡으려 한 것에서 비롯됐다. 중국 내 지능형 자동차 부문에서 화웨이의 절대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IT 기업의 자동차 진출은 이제 익숙하다. 샤오미는 직접 생산하고 구글은 로보택시 확대를 위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제조사를 고른다. 완성차 공장을 가진 제조사들이 서로 구글의 로보택시를 만들어주겠다고 나서는데 이때 조건은 구글의 자율주행 지능 사용이다. 구글에 공급하는 제품 뿐 아니라 기존 개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자동차에도 구글의 두뇌 적용을 요구한다. 두뇌를 지배해 자동차를 만드는 제조사를 종속시키려는 속셈이다.
종속되지 않으려는 기존 자동차회사의 노력도 필사적이다. 흔히 말하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가 대표적이다. 지능의 완성을 위해 막대한 투자비를 쏟는데 이때 부담은 개발 비용이다. 결과로 연결하면 자체 AI가 들어간 자동차의 실제 판매 가격은 IT 기업과 개발 비용을 분담한 제조사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쉬운 표현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사이 프리미엄 가치를 만드는 데 치중한다. 불리한 제품 가격을 브랜드에서 만회하려 한다.
그런데 브랜드 가치를 높일 때 필요한 것은 물리적인 시간이다. 제품과 서비스 등 모든 가치 활동 자체가 시간에 따라 점진적으로 소비자에게 각인되는 탓이다. 반면 화웨이와 같은 IT 기업은 단시간 내 지능의 고도화를 이뤄 프리미엄 가치를 만들려 한다. 프리미엄을 표방한 신생 브랜드는 흔히 말하는 브랜드 유산, 즉 해리티지가 없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활발한 IT와 자동차 기업의 새로운 브랜드 만들기가 아직 한국에선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씩의 변화는 읽힌다. 지난 4월 기아와 LG전자가 손잡고 ‘PV5 슈필라움’ 컨셉트를 선보인 게 대표적이다. 서로 손잡고 모빌리티의 공간 활용성 극대화를 추진하는데 전자제품과 AI 솔루션도 함께 만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서서히 협업을 확대하면 궁극에 ‘슈필라움’이라는 독립 브랜드가 두 기업의 합작사를 통해 등장할지 모른다. 지금은 그것이 글로벌 흐름이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