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A·ACO, '수소 레이스카' 사실상 열어둬
-현대차·토요타, 수소 모터스포츠 경쟁 가능성 열려
-끊임없이 제기되는 '수소 협력설'..모터스포츠서 구체화?
지난해 현대자동차와 토요타가 나란히 선 순간은 국내외에서 적잖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나란히 랠리카에 탑승한 정의선 회장과 토요다 아키오 회장은 그 해 가을 랠리재팬에서 다시 만났고 일본 주요 신문에는 이들의 우정을 과시하는 한글 광고가 등장했다. 최근에는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현장에 차린 '쌍둥이 부스'까지 이들의 의기투합은 현재진행형이다.
일각에서는 현대차와 토요타가 수소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다는 점에서 양측의 수소 협력 가능성을 점쳐왔다. 정의선 회장이 "(토요타와)수소를 얘기해서 같이 좀 잘 협력하려고 한다"라고 운을 떼면서 기대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간의 만남과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협력의 틀이 공개적으로 가시화 된 적은 없다. 서로를 향한 우호적인 시그널은 오갔지만 실제 기술 공유나 공동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대는 있었지만 결정적인 한 수는 아직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하나의 실마리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둘은 여전히 각자의 방식으로 수소차를 다듬고 있지만 그 결과물은 서킷 위에서 처음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이들의 의미있는 경쟁이 이뤄질 가능성이다.
그 중심에는 국제자동차연맹(FIA)과 르망24시를 주관하는 ACO가 있다. FIA는 최근 액체 수소 연료 사용을 전제로 한 연료 저장, 탱크 충돌 안전성, 충전구 설계, 누출 탐지 기준 등을 담은 안전 규정을 승인했다. 그게 포뮬러 원(F1)이건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이건 FIA 주관 경기에 수소차가 출전할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ACO 역시 이를 기반으로 2028년 르망24시 대회에서 수소 프로토타입 클래스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인 기술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 경량화, 냉각 기술, 충전 인프라, 고압 탱크 규격 등 구체적인 과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현대차와 토요타의 행보는 이 규정들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브랜드를 앞세워 올해 처음 르망에 진입했다. 당장 내년부터 최상위 클래스인 하이퍼카 클래스에 데뷔할 방침이다. 토요타도 르망 참가 40주년을 기념한 수소 엔진 레이스카 GR LH2 레이싱 콘셉트를 공개한 상황.
당장 이와 관련한 양측의 입장은 없다. 하지만 새 규정 승인에 맞춰 르망에 진입했다는 점, 수소 레이스카 콘셉트를 공개했다는 점은 많은 의미를 던진다. 돌이켜보면 제네시스가 르망에 나가는 것도, 토요타가 하이브리드 레이스카를 르망에 투입할 것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기술의 흐름이 점차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 그간 현대차와 토요타는 수소연료전지(FCEV)에 주력해왔고 토요타는 이에 더해 수소를 직접 연소시키는 수소 내연기관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현대차도 지난해 수소 연소 엔진 개발 사실을 공개하며 40% 이상의 열효율을 달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쯤 되면 자연스러운 질문 하나가 생긴다. 현대차와 토요타는 협력할까, 아니면 경쟁할까? 어떤 일이건 두 회사는 오랜 시간 경쟁해왔고 기술의 방향도 다르다. 그럼에도 지속 가능한 모빌리티라는 대전제 하에 최소한 기술 표준을 함께 맞추는 전략적인 공조는 가능하지 않겠냐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모터스포츠는 언제나 기술을 가장 먼저 시험하는 장이었다. 전동화의 시작도, 터보엔진의 르네상스도, 모두 서킷에서 피어난 열매다. 이제는 달리는 수소, 곧 수소 기반 모터스포츠라는 새로운 장이 열릴 차례다.
현대차와 토요타는 흐름의 최전선에서 또다시 마주하고 있다. 경쟁과 협력이 교차하는 이 묘한 구도 속에 드러날 수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정의선 회장과 토요다 아키오 회장이 르망24시 무대에서 또 한번 만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