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역사를 마무리하는 '파이널 에디션'
-폭스바겐 최초 플래그십 SUV의 '마지막'
-절제된 품격과 완성도로 시대를 마무리하다
새로운 차가 나오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한 시대를 대표했던 이름이 사라지는 일은 흔치 않다.

별은 지는 순간 가장 밝은 법이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생을 마감한 오장원의 밤. 이 순간은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었다. 촉나라를 떠받치던 마지막 기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고, 한 시대가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그 장면을 두고 '오장원의 별이 졌다'고 기억한다.
폭스바겐 투아렉도 비슷한 운명을 맞고 있다. 2002년 등장한 이후 24년동안 폭스바겐 기술력의 정점이었던 차. 브랜드를 넘어 폭스바겐그룹이 가진 모든 기술을 가장 먼저 품었던 상징적인 플래그십이었다. 그리고 올해. 투아렉은 생산 종료를 앞두고 '파이널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디자인&상품성
폭스바겐은 늘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다. 투아렉은 그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차다.
24년 동안 세 번의 세대교체를 거쳤지만 투아렉은 한 번도 유행을 좇지 않았다. 과감한 캐릭터 라인을 넣거나 거대한 그릴로 존재감을 과시하지도 않았다. 대신 비례와 완성도,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으로 플래그십의 품격을 만들어왔다.
파이널 에디션 역시 같은 방식이다. 프론트 LED 라이트 스트립은 좌우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차폭을 더욱 넓어 보이게 만들고 브랜드 최초로 적용한 IQ.라이트 HD 매트릭스 헤드램프는 투아렉만의 얼굴을 완성한다. 화려함보다는 기술이 디자인을 이끄는 방식이다. 3만8,000개 이상의 인터랙티브 LED는 상황에 따라 빛의 형태를 바꾸고, 차선을 안내하며, 상대 운전자의 시야를 피해서만 빛을 비추며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옆모습 역시 투아렉답다. 길게 뻗은 보닛과 뒤로 갈수록 단단하게 조여지는 루프라인은 대형 SUV 특유의 균형감을 살린다. 여기에 R라인 전용 사이드 스커트와 블랙 디퓨저가 더해지면서 지나친 장식 없이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후면은 더욱 간결하다. 가로로 이어지는 LED 라이트와 'L'자 그래픽은 화려한 그래픽 경쟁이 치열한 요즘 SUV들과 달리 절제된 모습으로 더 큰 개성을 드러낸다.
파이널 에디션이라는 이름답게 곳곳에는 마지막을 기념하는 흔적도 남겨뒀다. 윈도우 프레임에는 레이저로 새긴 'FINAL EDITION' 레터링이 들어가고 실내 기어레버와 도어 스커프, 인테리어 트림에도 같은 문구를 새겼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평생 한 번도 보지 않을 작은 디테일이지만 '이 차가 마지막이다'라는 사실을 가장 조용하고도 품위 있게 알려준다.
실내는 12인치 디지털 콕핏과 15인치 MIB3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하나의 거대한 디지털 공간을 만든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정보를 자연스럽게 시야 안으로 가져온다. 스마트폰 무선 연결과 음성인식, 45W USB-C 충전 포트 등 최신 편의 기능도 대거 적용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기본'이다. 18방향 에르고 컴포트 시트에는 열선·통풍·마사지 기능을 모두 담았고 4존 공조장치와 파노라마 선루프, 소프트 도어 클로징, 뒷좌석 커튼까지 아낌없이 기본 적용했다. 여기에 730W 출력의 다인오디오 컨시퀀스 시스템은 콘서트홀 같은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경쟁차들이 옵션으로 돌리는 품목을 투아렉은 자연스럽게 품고 있다.
▲성능
제갈량은 삼국지에서 가장 강한 장수가 아니었다. 관우처럼 적진을 돌파하지도 않았고 장비처럼 창 하나로 전장을 뒤흔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 없었다. 수많은 병력과 무기, 전략을 하나로 엮어 전장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투아렉도 그렇다. 6기통 TDI 엔진이 내는 286마력과 61.2㎏·m의 토크는 요즘 기준으로 압도적인 숫자가 아니다. 제로백 6.4초 역시 슈퍼 SUV 시대에서는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운전대를 잡고 몇 분만 지나면 숫자는 의미를 잃는다. 빠르다기보단 모든 것을 가장 잘 조율하고 있어서다.

TDI 엔진은 저회전부터 두터운 토크를 밀어내고 8단 자동변속기는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변속한다. 상시 사륜구동은 노면을 읽으며 네 바퀴에 힘을 배분하고 에어 서스펜션은 승차감과 차체 거동을 끊임없이 조율한다. 여기에 올 휠 스티어링까지 더해지면서 4.9m에 달하는 차체는 생각보다 훨씬 작게 움직인다.
각 기술은 따로 보면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에어 서스펜션이 노면을 걸러내는 동안 올 휠 스티어링은 회전 반경을 줄이고 루프 로드 센서는 차체 움직임을 분석해 서스펜션과 차체 제어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보정한다. IQ.드라이브는 주변 교통을 읽고 HD 매트릭스 헤드램프는 앞길을 비춘다. 각각은 하나의 기능이지만, 함께 작동하면 하나의 시스템이 된다.
그래서 투아렉은 특정 능력이 돋보이는 SUV가 아니다. 대신 어떤 길에서도, 어떤 속도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불안하지 않도록 만드는 SUV다. 고속도로에서는 독일 세단처럼 묵직하고 와인딩에서는 체급을 잊게 만들 만큼 민첩하다. 비포장에서는 차체를 부드럽게 띄우며 노면을 흡수하고 도심에서는 올 휠 스티어링 덕분에 대형 SUV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제갈량이 전장을 직접 휘젓지 않았지만 전쟁 전체를 움직였듯, 투아렉 역시 폭발적인 출력 대신 엔진과 변속기, 사륜구동, 에어 서스펜션, 후륜 조향,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까지. 수많은 기술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낸다. 그래서 투아렉은 가장 화려한 영웅은 아니었지만, 가장 완성도 높은 플래그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총평
투아렉은 폭스바겐 역사에서 특별한 차다. 브랜드 최초의 SUV였고 포르쉐 카이엔과 플랫폼을 공유하며 폭스바겐 기술력의 기준을 세웠다. 다카르 랠리에서는 세 차례 우승을 거머쥐며 '잘 달리는 SUV'라는 명성도 얻었다. 그 뒤에 티구안과 티록, 아틀라스 같은 SUV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투아렉이 먼저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아마 앞으로 더 많은 전기 SUV를 만들 테다. 투아렉보다 더 빠르고, 더 똑똑한 차도 등장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언젠가 나올 그 차가 '폭스바겐의 플래그십 SUV'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더라도 결국 우리는 투아렉을 떠올릴 것 만은 분명하다. 오장원의 별이 떨어져도 사람들은 그 별이 가장 밝게 빛나던 밤을 오래 기억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폭스바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은 프레스티지가 1억642만1,000원, R-라인은 1억1,650만6,000원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