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RX 400h 시작으로 전동화 기술 꾸준히 축적
-하이브리드 노하우 바탕으로 렉서스다운 BEV 완성
-20년 전동화 여정, 마침내 핵심 세단 ES까지 이어져
자동차 산업의 중심이 전기차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완성차 회사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경쟁적으로 전기차를 내놓고 전용 플랫폼과 대용량 배터리, 충전 속도를 앞세우며 새로운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렉서스의 행보는 조금 달랐다. 전기차라는 거대한 흐름에 성급하게 편승하기보다는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차근차근 답을 찾아 나갔다.

그 중심에는 하이브리드가 있었다. 렉서스에게 하이브리드는 정체성이자 자랑이다. 그만큼 일반적인 개념으로 엔진에 전기모터를 더해 연료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아니었다. 모터를 어떻게 움직이고 배터리를 어떤 방식으로 관리해야 하는지, 엔진과 전기모터의 힘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해야 하는지를 오랜 시간 양산차를 통해 익힐 수 있는 기반이었다. 다시 말해 렉서스에게 하이브리드는 전기차 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연습장이었던 셈이다.
출발점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렉서스는 RX 400h를 선보이며 럭셔리 시장에 본격적인 하이브리드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접근 방식이었다. 친환경을 위해 성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모터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성능과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이후 렉서스 전동화 전략을 관통하게 될 방향성이 이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렉서스는 서두르지 않았다. 다양한 차종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확대 적용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배터리의 충전과 방전, 온도 관리부터 모터와 인버터의 효율, 회생제동과 제동 시스템의 연결, 전기모터를 활용한 정교한 구동력 제어까지 전동화 자동차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를 실제 도로 위에서 다듬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을 렉서스가 추구해온 가치와 연결했다는 점이다. 전기모터의 즉각적인 반응을 무조건 강한 가속에 사용하는 대신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드는 데 활용했고 엔진과 모터가 서로 역할을 주고받는 과정에서도 운전자가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완성도를 높였다. 정숙성과 승차감 역시 마찬가지다. 전동화 기술 자체를 강조하기보다는 이를 이용해 차의 기본기를 높이는 쪽에 무게를 뒀다.
때문에 전기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을 때도 렉서스의 접근은 비교적 차분했다. 누가 더 빨리 순수전기차를 내놓는지를 놓고 경쟁하기보다 오랜 시간 하이브리드를 만들며 확보한 기술과 노하우를 BEV에 어떻게 옮겨 담을 것인지 고민했다.

그 결과물이 구체적인 전략으로 모습을 드러낸 시점이 2019년이다. 렉서스는 도쿄모터쇼에서 새로운 전동화 비전인 'Lexus Electrified'를 발표했다. 이는 단순히 전기차 제품군을 늘리겠다는 선언과는 조금 달랐다. 렉서스는 전동화 기술을 활용해 자동차의 기본 성능 자체를 크게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특히 하이브리드를 개발하며 축적한 모터 제어 기술을 기반으로 파워트레인은 물론 스티어링과 서스펜션, 브레이크까지 유기적으로 제어해 주행 성능과 핸들링, 운전의 즐거움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었다. 전동화를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새로운 도구로 정의한 것이다.
같은 해 렉서스 최초의 양산형 순수전기차 UX 300e도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서도 렉서스의 신중한 접근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어 화려하게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기보다 익숙한 UX를 기반으로 자신들이 축적해온 전동화 기술을 하나씩 검증하는 방법을 택했다. 모터와 인버터, 기어, 고전압 배터리의 효율을 높이는 데 기존 하이브리드 개발 경험을 활용했고 배터리 온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기술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러한 과정은 렉서스에게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를 서로 완전히 다른 기술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엔진의 존재 여부에는 차이가 있지만 전기모터를 정교하게 제어하고 배터리를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사용하며 회생제동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기본적인 경험은 이어진다. 렉서스는 하이브리드에서 확보한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전기차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을 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감도 커졌다. UX 300e를 통해 첫 발을 내디딘 뒤에는 전기차 전용 모델 RZ를 선보이며 영역을 넓혔다. 전동화 기술을 이용해 렉서스 특유의 주행감각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렉서스가 2019년 선언했던 'Lexus Electrified'가 하나씩 실제 제품으로 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약 20년에 걸친 전동화 여정은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주인공은 신형 ES다. 8세대로 거듭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순수전기 파워트레인을 품었다. 렉서스에 전기차 한 종류가 추가됐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새 차는 하이브리드와 BEV를 함께 제공하며 전기차는 앞바퀴굴림 ES 350e와 네바퀴굴림 ES 500e로 나뉜다. 전동화에 맞춰 플랫폼과 패키징을 새롭게 다듬고 렉서스가 오랫동안 중요하게 생각해온 정숙성과 승차감 역시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주목할 부분은 ES라는 이름이다. UX 300e가 렉서스 최초의 전기차로 가능성을 확인하는 역할을 했고 RZ가 전용 BEV를 통해 전기차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신형 ES는 조금 다른 임무를 맡는다. 브랜드의 핵심이자 오랜 시간 렉서스를 대표해온 차가 본격적으로 BEV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는 전기차가 더 이상 렉서스 라인업 한쪽에 자리한 특별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20년 동안 하이브리드로 축적한 전동화 기술을 이제 브랜드를 대표하는 주력 제품에 적극적으로 적용할 만큼 준비가 됐다는 자신감의 표현에 가깝다.
이처럼 렉서스 전기차의 역사를 BEV 출시 시점만 놓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시작은 2019년 UX 300e보다 훨씬 앞선 2005년 RX 400h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렉서스는 하이브리드를 통해 모터와 배터리를 이해했고 수많은 양산차를 통해 전동화 기술을 다듬었다. 이후 'Lexus Electrified'라는 이름으로 방향을 명확히 했으며 UX 300e와 RZ를 거쳐 마침내 핵심 세단 ES까지 전기차 영역을 넓혔다.
전기차 시대에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드는 대신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준비해온 셈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었던 만큼 렉서스가 내놓는 전기차에는 분명한 이유와 방향성이 있다. 하이브리드로 시작해 20년 동안 쌓아온 전동화 경험, 그 긴 여정의 현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차가 바로 신형 ES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