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역사 핵심 세단 최초로 순수전기 파워트레인 탑재
-ES 350e·500e 구성, 렉서스 전동화 기술 대거 집약
렉서스가 전기차를 만드는 과정은 꽤 신중했다. 하이브리드로 오랜 시간 전동화 기술을 익혔고 UX 300e를 통해 처음 순수전기차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전용 전기차 RZ에서는 다이렉트4를 비롯한 새로운 전동화 기술을 적극적으로 구현했다. 짧지만 탄탄한 과정을 거치며 렉서스다운 전기차가 무엇인지 하나씩 답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브랜드 핵심 차종에 적용할 차례다. 주인공은 ES다. ES는 1989년 렉서스 출범과 함께 LS와 나란히 등장한 브랜드 원년 멤버다. 이후 8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 판매되며 렉서스를 대표하는 글로벌 핵심 차종으로 성장했다. 부드러운 승차감과 뛰어난 정숙성, 넉넉한 실내는 오랜 시간 ES를 상징하는 가치로 자리 잡았다.
그런 ES가 8세대로 거듭나면서 역사상 처음 순수전기 파워트레인을 품었다. 렉서스 역시 신형 ES를 차세대 전동화 라인업을 이끄는 선봉으로 정의한다. 브랜드 중심으로 전기차의 영역을 본격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미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왜 하필 ES였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그리고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ES와 전기차는 서로 잘 어울린다. ES는 애초부터 자극적인 자동차가 아니었다. 폭발적인 가속이나 화려한 사운드보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달리는 능력, 탑승자를 편안하게 만드는 승차감과 넉넉한 공간을 무기로 성장했다. 엔진이 사라지고 전기모터가 들어가면 이러한 성격은 오히려 더욱 선명해질 수 있다.
전기모터는 처음 움직이는 순간부터 매끄럽게 힘을 낼 수 있고 엔진에서 발생하는 진동과 소음도 없다. 차체 아래 넓게 자리 잡은 배터리는 무게중심을 낮춰 안정적인 움직임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결국 전기차의 구조적인 장점 상당수가 ES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가치와 겹친다.

그래서 렉서스는 전기차에 맞춰 ES의 기본 틀부터 다시 손봤다. 신형은 하이브리드와 BEV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바탕으로 차체를 키웠고 휠베이스도 늘렸다. 배터리가 들어가는 공간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ES의 강점인 넉넉한 실내와 편안한 탑승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순수전기차는 ES 350e와 ES 500e 두 가지다. 350e는 앞바퀴굴림을 택해 효율과 편안함에 초점을 맞췄고 500e는 앞뒤에 각각 모터를 넣은 네바퀴굴림 구조다. 특히 500e에는 RZ를 통해 발전시켜온 다이렉트4 시스템도 넣었다. 전기모터의 빠른 반응을 이용해 앞뒤 구동력을 능동적으로 조절하고 운전자의 의도에 맞춰 차의 움직임을 보다 세밀하게 다듬는다.
디자인에서도 변화는 분명하다. 신형 ES는 차세대 전기차 콘셉트 LF-ZC에서 보여줬던 새로운 디자인 방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기존 스핀들 그릴의 존재감을 차 전체에 적용하는 스핀들 보디 개념을 들고왔다. 매끈한 면과 공력 성능을 강조한 실루엣을 통해 전혀 다른 인상을 만든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변화가 전기차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ES 역시 같은 흐름을 공유한다.
과거에는 기존 자동차를 바탕으로 전기차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반대의 모습도 나타나는 셈이다. 전기차를 개발하면서 고민한 디자인과 패키징, 주행 기술이 다시 렉서스의 주력 제품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전동화가 더 이상 하나의 파워트레인 선택지가 아니라 브랜드 자체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신형 ES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렉서스가 전기차 때문에 ES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다. 전기차를 이용해 ES가 원래 잘했던 것을 더욱 잘하려 한다. 조용한 차는 더욱 조용하게 만들고 부드러운 움직임은 한층 자연스럽게 다듬는다. 여기에 넓어진 공간과 새로운 디지털 경험을 더해 탑승자가 느끼는 편안함의 기준까지 높인다. 전동화를 위해 ES의 성격을 바꾼 것이 아니라 ES라는 자동차를 더욱 완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동화를 활용한 것이다.
렉서스는 지난 20년 동안 하이브리드를 통해 전동화 기술을 익혔고 UX 300e로 순수전기차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RZ에서는 전용 전기차를 만들며 기술의 폭을 넓혔다. 그리고 이제 브랜드를 대표하는 ES에 그 경험을 꺼내 들었다. 전기차를 얼마나 빨리 만드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더 큰 가치는 어떤 전기차를 만드느냐다. 렉서스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그 답을 찾았다. 그리고 그 답을 가장 자신 있는 차에 담았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