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통 픽업 두 대의 강력한 매력
-넉넉한 크기와 풍부한 성능 갖춘 시에라
-캐니언, 아웃도어 레저활동에 최적화돼
잠실의 빌딩 숲을 빠져나와 목적지인 가평 경반분교로 향했다. 잘 닦인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산길 깊숙이 들어가 거친 돌과 흙, 물길까지 지나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온로드와 오프로드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번 여정은 공교롭게도 GMC가 가진 두 픽업의 성격을 확인하기에 더없이 좋은 무대였다.

▲도로 위 슈퍼스타, 시에라
첫 번째 주자는 시에라다. 그것도 2026년형 시에라 드날리를 바탕으로 특별한 존재감을 더한 '스칼렛 나이트 에디션'이다. 목적지까지 가는 긴 온로드 구간을 생각하면 꽤 적절한 선택이었다. 아니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리는 차였을지도 모른다.
시에라는 출발 전부터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풀사이즈 픽업답게 거대한 차체와 높게 솟은 보닛, 압도적인 그릴이 시선을 붙잡는다. 단순히 크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로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차다.
시승차인 스칼렛 나이트 에디션은 여기에 한술 더 뜬다. 드날리를 기반으로 LED 프론트 레드 GMC 엠블럼을 비롯해 GMC 로고 프로젝션 퍼들램프, 머드가드, 테일게이트 스텝라이팅, LED 프론트 도어 실 플레이트 등 5가지 전용 액세서리를 더했다. 특히, 붉게 빛나는 GMC 엠블럼은 거대한 차체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멀리서도 평범한 픽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린다.
잠실을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속도를 올리자 시에라의 또 다른 매력이 나타났다. 크기에서 오는 부담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지고 대신 넉넉함과 여유가 그 자리를 채운다. 핵심은 6.2ℓ V8 직분사 가솔린 엔진이다. 10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린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은 요즘 차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풍족한 감각을 제공한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지 않아도 커다란 차체를 가볍게 밀어내고 속도를 높이는 과정에는 조금의 조급함도 없다. 힘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넉넉한 힘을 품고 달리는 느낌이다.



승차감도 인상적이다. 흔히 픽업이라고 하면 적재함과 프레임 구조에서 오는 투박한 움직임을 떠올리기 쉽지만 시에라에서는 그런 선입견이 무색하다. 어댑티브 라이드 컨트롤 서스펜션은 노면의 굴곡을 능숙하게 걸러내고 차체의 큰 움직임도 안정적으로 다독인다. 잘 세팅된 고급 SUV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래서 운전하는 동안 픽업을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높은 시야와 거대한 차체가 아니었다면 프리미엄 대형 SUV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고속 영역에서도 차분하고 장거리 이동에서는 편안하다. 풀사이즈 픽업의 크기가 오히려 여유라는 장점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여기에 감성을 자극하는 결정적인 장치가 하나 있다. 액티브 가변 배기 시스템이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면 시에라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진다. 가속페달에 힘을 주자 낮고 굵은 배기음이 실내를 채운다. 고회전에서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와는 정반대다. 커다란 배기량에서 나오는 묵직한 중저음, 마치 정통 미국 머슬카에서 들을 법한 바리톤 사운드가 귓가를 두드린다.
이 소리는 시에라의 성격과 무척 잘 어울린다. 6.2ℓ V8의 풍족한 힘과 거대한 차체, 높은 운전석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배기음까지 더해지니 단순히 빠르게 달리는 것 이상의 만족감이 생긴다. 숫자로 표현되는 성능보다 운전자의 감정을 움직이는 영역이다.
그래서 시에라는 픽업계의 '끝판왕'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압도적인 디자인과 크기에서 오는 존재감, 온로드에서의 강력한 성능과 안락한 승차감, 여기에 V8 엔진과 배기음이 만드는 감성까지 빠지는 구석이 없다.
멀티프로 테일게이트와 360도 카메라 등 픽업 본연의 활용성을 높이는 기능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일을 위한 트럭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프리미엄 SUV의 역할과 레저, 감성의 영역까지 넘나드는 차가 됐다. 그렇게 시에라를 타고 편안하게 가평으로 향했다. 하지만 경반분교로 가까워질수록 도로의 표정이 달라졌다. 반듯한 아스팔트가 사라지고 흙과 돌이 나타났다. 여기부터는 주인공을 바꿀 차례다.


▲험로를 놀이터처럼...캐니언의 진짜 모습
시에라에서 내려 캐니언으로 옮겨 탔다. 풀사이즈 시에라 옆에서는 한 체급 작은 동생처럼 보이지만 험로에 들어서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히려 몸집을 줄인 것이 무기가 된다.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산길을 종횡무진 한 것. 동력계부터 만만치 않다. 풀사이즈 픽업 실버라도를 통해 검증된 2.7ℓ 터보 직분사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314마력, 최대토크 54㎏·m를 발휘한다. 내구성을 강화한 실린더 블록과 강성을 높인 크랭크샤프트를 사용했고 하이드라매틱 Gen2 8단 자동변속기가 힘을 전달한다.
오프로드에서는 절대적인 출력보다 힘을 얼마나 정확하고 세밀하게 꺼내 쓰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캐니언의 조합은 만족스럽다. 낮은 속도로 바위와 요철을 넘을 때 변속기는 불필요하게 부산스럽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는 신속하게 단수를 바꾼다. 운전자는 가속페달과 스티어링 휠 조작에만 집중하면 된다.
오토트랙 액티브 2 스피드 사륜구동 시스템과 리어 디퍼렌셜 잠금 기능도 든든한 지원군이다. 노면 상황에 맞춰 구동력을 세밀하게 제어하고 오프로드와 험지, 견인·운반 등 다양한 드라이브 모드도 마련했다. 운전석에서 오프로드 퍼포먼스 디스플레이를 바라보면 차가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앞에서는 굵은 돌이 길을 막고 있고 한쪽 바퀴의 접지력이 떨어지는 순간도 있지만 차는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다. 운전자가 걱정하는 것보다 캐니언이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다. 어지간한 험로 탈출은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다.
외형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캐니언은 2인치 팩토리 리프트 서스펜션을 적용해 기본적으로 차체가 높게 자리한다. 여기에 넓은 울트라 와이드 트랙과 험로 주행을 고려한 프론트 범퍼 설계를 통해 안정적인 자세를 갖췄다. 특히, 높은 지상고와 유리한 어프로치 앵글은 눈앞에 커다란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굵직한 블록 패턴의 타이어는 돌과 흙을 움켜쥐듯 지나간다. 바닥에 굵은 바위가 나타나도 차체가 쉽게 주눅 들지 않는다.




오프로드를 달리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차가 운전자에게 주는 자신감이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보다 '이 정도는 충분하다'는 믿음을 준다. 오랜 시간 픽업을 만들어 온 회사의 노하우가 단순히 제원표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깊숙이 들어간 경반분교 주변에서 잠시 차를 세웠다. 시동을 끄자 조금 전까지 들리던 엔진음 대신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주변을 채웠다. 가을의 문턱을 알리는 듯 살랑이는 바람이 불었고 아직은 따사로운 햇살이 높은 차체와 적재함 위로 내려앉았다. 도시에서는 강인하고 투박하게만 보였던 캐니언의 디자인도 자연 속에서는 묘하게 풍경의 일부가 됐다.
어쩌면 이 순간이 캐니언이라는 차의 존재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하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픽업은 단순히 사람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이동수단이 아니다. 장비를 싣고 무언가를 끌고 포장도로가 끝난 뒤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 캐니언은 최대 3,493㎏의 견인 능력과 통합형 트레일러 브레이크 시스템, 멀티스토우 테일게이트, 스프레이온 베드라이너, 220V 파워 아울렛 등으로 그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캠핑이나 낚시, 산악 레저와 각종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차를 구입한 뒤 가장 큰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 역시 번화한 도심 한복판보다는 이런 곳에서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캐니언은 자연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매력이 커지는 차다.


▲서로 다른 두 대, 하나의 답
시에라와 캐니언을 하루 동안 번갈아 타면서 두 차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GMC라는 브랜드를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에라는 여유다. 거대한 차체와 6.2ℓ V8 엔진을 앞세워 온로드를 호쾌하게 누비고 고급 SUV에 버금가는 승차감과 편의성으로 풀사이즈 픽업이 얼마나 호화로워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스칼렛 나이트 에디션의 강렬한 존재감과 액티브 가변 배기가 들려주는 미국식 감성은 덤이다.
반대로 캐니언은 모험에 가깝다. 시에라보다 작은 차체를 무기로 험로를 거침없이 파고들며 정교한 사륜구동 시스템과 강력한 토크, 높은 지상고를 활용해 포장도로 너머의 세상으로 운전자를 이끈다. 아웃도어와 레저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동반자다.
하지만 두 차가 향하는 결론은 같다. 바로 GMC의 픽업 노하우다. 시에라와 캐니언을 타보면 '역시 한두 번 픽업을 만들어 본 회사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GMC가 120년 넘게 트럭을 만들며 켜켜이 쌓아온 경험은 단순히 차를 튼튼하고 강력하게 만드는 데 머물지 않는다. 픽업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픽업을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리고 픽업을 선택한 소비자가 어떤 만족을 원하는지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하다.
잠실에서 경반분교까지 이어진 하루의 여정이 이를 압축해서 보여줬다. 잘 닦인 도로에서는 시에라가 누구보다 화려하고 여유로웠고 길이 거칠어지자 캐니언이 앞으로 나섰다. 도로 위 슈퍼스타와 자연 속 모험가. 서로 다른 두 대의 GMC 픽업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이 왜 필요한 차인지 분명하게 증명했다. 그리고 두 차를 번갈아 타고 나니 한 가지 사실만큼은 확실해졌다. 픽업을 오래 만들어왔다는 것은 단순한 역사가 아니다. 그 시간만큼 쌓인 경험과 노하우가 결국 차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