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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 르노 필랑트, 수랏간에서 만든 프렌치 요리

입력 2026-03-09 00:00 수정 2026-03-09 08:40


 -장르 섞였지만 균형있는 프렌치 요리 연상
 -뛰어난 정숙성과 승차감, 준대형 세단 견줄만

 

 자동차에도 요리가 있다면 이런 차가 아닐까. 프랑스 셰프가 레시피를 만들고 한국의 수랏간에서 완성된 요리. 르노 필랑트는 그런 차다. 르노 브랜드의 감성과 설계 철학 위에 르노코리아의 개발과 생산 노하우가 더해진 차다. 르노가 강조하는 ‘본 인 프랑스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

 

 필랑트는 르노 인터내셔널 게임 플랜 2027 전략 아래 등장한 브랜드의 플래그십 크로스오버다. 그랑 콜레오스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형제 차지만 성격은 꽤 다르다. 그랑 콜레오스가 정통 SUV의 균형에 초점을 맞췄다면 필랑트는 세단의 감각을 더 강하게 끌어온 차에 가깝다. 실제로 이 차를 경험해보면 SUV와 세단 사이 어딘가에서 절묘한 균형을 찾아낸 차라는 인상이 강하다.

 

 ▲디자인&상품성
  필랑트는 한눈에 봐도 기존 SUV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르노는 이 차를 ‘크로스오버’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SUV에 쿠페 스타일을 얹은 형태가 아니라 세단과 SUV의 특성을 동시에 담은 새로운 차체 접근법이라는 것. 실제로 차를 가까이서 보면 그 설명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전면부는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르노의 로장주 로고를 중심으로 입체적으로 구성된 그릴이 시선을 끈다. 특히 로고 주변을 감싸는 조명과 그릴 라이팅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차 전체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요소다. 상단은 차체 색상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하단은 유광 블랙으로 마감해 시각적으로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헤드램프 역시 디자인의 핵심이다. 차체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얇은 LED 램프는 기술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면서도 전면부를 넓어 보이게 만든다. 시동을 켜고 끌 때 펼쳐지는 웰컴·굿바이 라이팅 애니메이션은 단순한 장식 이상의 감성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측면에서는 차체 비율이 더욱 인상적이다. 길게 이어지는 루프라인과 얇은 윈도 그래픽 덕분에 차가 실제보다 더 길어 보인다. 전장 4,915㎜, 전폭 1,890㎜, 전고 1,635㎜라는 차체 비율 역시 일반적인 SUV보다 낮고 길다. 특히 뒤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루프라인과 스포일러는 쿠페형 SUV의 느낌을 강하게 만든다. 동시에 큰 휠 아치와 19인치 또는 20인치 휠이 결합되면서 SUV 특유의 존재감도 유지한다. 

 

 후면부는 차명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 적용됐다. ‘필랑트’는 별똥별을 의미하는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루프에서 스포일러로 이어지는 라인이 마치 하늘을 가르는 궤적처럼 날렵하게 정리되어 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서로 다른 장르를 섞어 만든 프렌치 요리와도 닮았다. 세단의 낮고 긴 비율, SUV의 당당한 체격, 쿠페의 유려한 루프라인이 한데 섞였지만 결과물은 의외로 자연스럽다.

 

 실내는 르노가 ‘프리미엄 테크 라운지’라고 부르는 공간이다. 단순히 디지털 장비를 많이 넣는 방식이 아니라 거실 같은 편안함과 기술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강조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픈R 파노라마 스크린이다. 세 개의 12.3인치 디스플레이가 하나의 패널처럼 이어져 있으며 계기판과 센터 디스플레이, 동승석 디스플레이가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실내 공간 역시 넉넉하다. 2,820㎜의 긴 휠베이스 덕분에 뒷좌석 무릎 공간은 320㎜에 달한다. 헤드레스트 일체형 라운지 시트는 몸을 감싸는 형태로 설계돼 장거리 주행에서도 편안함을 유지한다. 트렁크 공간도 실용적이다. 기본 633ℓ, 시트를 접으면 최대 2,050ℓ까지 확장된다. 기본적으로 전고가 그랑 콜레오스보다는 더 낮아서 접근성이나 적재성도 더 용이하다.  

 

 ▲성능
 시승차는 1.5ℓ 가솔린 터보 엔진과 두 개의 전기모터, 그리고 1.64㎾h 배터리를 결합한 직병렬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했다. 시스템 최고출력은 245마력으로 쏘렌토 하이브리드보다 높은 수치다. 연료 효율은 복합 15.7㎞/ℓ 수준. 싼타페 하이브리드와 쏘렌토 하이브리드와 비슷한 영역이지만 필랑트는 기본 19인치 휠을 장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효율 경쟁력이 돋보인다.

 

 주행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정숙성이다. 하이브리드를 타다 보면 엔진이 개입하는 순간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필랑트는 그 경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배터리로 달리는지, 엔진이 작동하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엔진 회전수가 높아질 때다. 급가속 상황이나 배터리 충전을 위해 엔진이 작동할 때에도 소음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반적인 하이브리드에서 들리는 앳킨슨 사이클 특유의 거친 엔진음과는 확실히 다른 질감이다.

 

 와인딩 로드에서는 차의 성격이 조금 더 분명해진다. 스티어링을 꺾는 순간 차의 반응이 꽤 직관적으로 따라온다. SUV라는 차체 형식을 생각하면 의외로 롤이 크지 않고 앞쪽이 먼저 무너지거나 뒤가 늦게 따라오는 느낌도 크지 않다. 차체가 노면을 비교적 진득하게 붙잡는 타입이다. 

 

 코너 진입에서 브레이크를 살짝 남긴 상태로 조향을 시작하면 앞바퀴에 하중이 자연스럽게 실리며 차가 부드럽게 방향을 바꾼다. 이후 가속 페달을 밟으면 전기모터 특유의 즉각적인 토크가 차를 밀어내며 코너 탈출이 꽤 경쾌하게 이어진다. 절대적인 스포티함을 강조한 셋업은 아니지만 SUV 치고는 상당히 정교하게 다듬어진 섀시 밸런스를 보여준다.

 

 고속 주행에서는 또 다른 성격이 드러난다. 속도를 끌어올릴수록 차는 점점 더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차체가 낮고 긴 비율을 가진 덕분인지 직진 안정성이 상당히 좋다. 스티어링을 크게 수정하지 않아도 차가 노면 위에서 차분하게 직선을 유지한다. 

 

 풍절음 역시 속도를 꽤 올린 이후에야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한다. 덕분에 속도계 숫자에 비해 체감 속도는 생각보다 낮다. 장거리 고속 크루징 상황에서는 SUV라기보다는 준대형 세단에 가까운 안정감이 느껴진다.

 

 ▲총평
 필랑트는 단순히 새로운 SUV가 아니다. 세단과 SUV 사이의 경계를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디자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주행 성격에서도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SUV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운 승차감을 제공하면서도 세단처럼 정숙하고 안정적인 주행 질감을 갖추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정숙성이다. SM7이 보여줬던 편안한 세단의 감각이 기억난 건 과한 생각일까. SM7의 또 다른 후계자라는 표현은 비약일까. 실제로 그 정도의 생각까지 하게 된다. 차체 형태는 SUV지만 주행 철학만큼은 여전히 르노 세단의 감각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도입부에서 이야기했던 ‘수랏간의 프렌치 요리’라는 표현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프랑스 셰프의 레시피 위에 한국 수랏간의 정교한 손길이 더해져 완성된 요리처럼 필랑트 역시 르노의 감성과 르노코리아의 완성도가 만나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준대형 세단으로 폼을 잡는 대신 또 다른 선택지를 찾고 있다면 이 차는 꽤 흥미로운 대안이 된다. 세단의 우아함과 SUV의 활용성을 동시에 원하는 소비자에게 필랑트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선택지다.

 

 필랑트의 가격은 4.331~5,218만원. 

 

 경주=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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