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고성능 이라는 쉬운 답을 피한 디펜더
-OCTA가 말하는 속도의 진짜 의미
랜드로버 디펜더 OCTA를 처음 마주하면 이 차를 '고성능 디펜더'라고 부르기 전 한 번 멈칫하게 된다. 잘 생각해보자. 고성능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이미 JLR이 써왔던 SV나 SVR이라는 문법이 더 자연스러웠을 테다. 나아가 '빠름'이 목적이었다면 110보다는 컴팩트한 90을 토대로 차체를 더 민첩하게 다듬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디펜더 OCTA는 그런 방향을 택하지 않았다. 왜일까.

▲디자인&상품성
디펜더 OCTA는 디펜더를 빠르게 만든 결과물이라기보다 빠름을 디펜더의 영역으로 끌어들여도 '태도를 잃지 않게 만든 차'에 가깝다.
외관은 그 철학을 과장 없이 드러낸다. 디펜더의 전통적인 실루엣을 유지하면서도 OCTA만의 독창성을 강조하기 위해 차고를 28㎜ 높였다. 쿼드 테일파이프는 ‘빨라졌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장치이자, 동시에 오프로더의 체격을 더 당당하게 보이게한다.


이를 위해 접근각과 이탈각을 개선하기 위해 앞뒤 범퍼를 재설계했고 언더바디 보호 설계도 강화했다. 글로스 블랙 프런트 그릴과 확장된 휠 아치가 만들어내는 인상은 단순한 스포티함이 아니라 견고함을 보여주는 장치 처럼 작동한다.



상품성에서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바디 앤 소울 시트다. 1열 등받이에 진동 변환기를 넣어 저주파 베이스를 ‘소리’가 아니라 ‘촉각’으로도 전달하는 구조인데 15개 스피커의 700W 메리디안 시스템과 맞물려 몰입감을 키운다.
흔히 이런 장치는 '재미'로만 소비되기 쉽다. 그런데 OCTA에서는 오히려 반대다. 거친 노면과 큰 타이어가 만드는 물리적 자극 위에 차가 제공하는 감각을 한 겹 더 쌓았다. 고급 파인다이닝에서 '맛의 레이어'를 중요시 하는 것 처럼 각종 경험을 층층이 쌓아 '거친듯 편안하다'라는 느낌을 준다.
▲성능
숫자만 보면 간단하다. 4.4ℓ 트윈터보 V8에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결합해 최고출력 635마력, 최대토크 76.5㎏·m를 낸다.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는 4.0초. 하지만 중요한 건 수치가 만들어내는 ‘감정’이 전통적 퍼포먼스 SUV와 다르다는 점이다.

차는 분명 거칠다. 높은 차체와 큰 타이어, 오프로더의 기본 자세는 감각적으로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편안하다. 부드러움이 아니라, 차가 상황을 감당하고 있다는 확신에서 오는 느낌이다.
실제로 달려보면 OCTA의 주행 감각은 숫자보다 차분하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도 차는 튀어나가지 않는다. 대신 차체 전체가 한 덩어리로 밀려 나가듯 속도를 쌓는다. 엔진 회전이 감각을 자극하기보다는, 이미 충분한 힘이 아래에 깔려 있다는 인상이 먼저 든다.
고속 영역에서도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차고가 높은 오프로더임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붙을수록 차가 긴장하거나 운전자를 붙잡지 않는다. 스티어링 휠에는 불필요한 정보가 걸러져 있고, 차체의 움직임은 크지만 불안하지 않다. ‘잘 눌러놓은 무게’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인상적인 건 노면이 거칠어질수록 오히려 이 차의 성격이 또렷해진다는 점이다. 요철과 패임은 숨기지 않지만 그 충격이 운전자에게 부담으로 전이되지 않는다. 서스펜션이 노면을 정리해주는 방식이 부드럽다기보다 단호하다는 쪽에 가깝다. 덕분에 차는 흔들리지만, 운전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디펜더 OCTA의 빠름은 흥분을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다. 고급 세단이 8기통·12기통을 얹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퍼포먼스가 필요해서가 아니다. 전 영역에서 여유롭기 위해서다. 디펜더 OCTA도 마찬가지다. 과시라기보다는 전제조건에 가깝다.
635마력이라는 출력은 크고 무거운 차체(2,665㎏)와 높은 지상고, 터레인 타이어, 긴 스트로크를 힘을 거의 쓰지 않고도 감당하는 상태를 만든다. 그래서 가속이 빠른데도 운전자를 재촉하지 않는다. 성능은 거들 뿐이라는 표현이 이 차에서는 수사로 들리지 않는다.

파워트레인의 성격을 봐도 색채는 더 뚜렷하게 느껴진다. ‘핫-비(hot-vee)’ 구조의 평행 트윈 스크롤 터보는 실용영역부터 고회전까지 고르게 토크를 낸다. 여기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가 20㎾를 보태 자칫 지칠 수 있는 영역에서 부족함을 메워준다. 그래도 모자라다면 다이내믹 런치 모드로 쓰면 최대토크를 81.6㎏·m까지 끌어 올릴 수도 있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극한에서의 지속성’이다. OCTA는 고성능 파워트레인을 혹독한 환경에서 쓰기 위한 전용 부품과 냉각 구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고강성 변속기 크래들, 전용 흡배기, 특수 오일 팬에 더해 두꺼운 라디에이터와 업그레이드된 오일 쿨러, 연료탱크 보호 열 차단재, 삼중 절연 연료 라인 등 독자적 냉각 시스템을 갖췄다. 짧은 순간의 최고 기록보다 다양한 지형과 속도에서의 반복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둔 셈이다.
이 차가 “영락없는 오프로더인데 빠르다”는 인상을 주는 이유는 빠름과 험로가 서로 배척되지 않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핵심이 6D 다이내믹스 서스펜션이다. 유압식 인터링크 네트워크 기반의 연속 가변 세미 액티브 댐퍼를 통해 온로드에서는 피칭과 롤을 사실상 완전히 억제하는 방향을 강조하고 거친 지형에서는 휠 아티큘레이션을 높여 장애물 극복과 편안함을 동시에 노린다. 스펙이 ‘거대한 오프로더’인데도, 고속에서 차가 불필요하게 흔들리거나 운전자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배경이다.


모드 체계는 OCTA의 성격을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스티어링 휠의 시그니처 로고 버튼을 한 번 누르면 스티어링·스로틀·서스펜션을 조정해 온로드 중심의 다이내믹 모드로 전환하고 길게 누르면 디펜더 최초의 퍼포먼스 중심 오프로드 주행 모드인 ‘OCTA 모드’로 들어간다.
▲총평
디펜더 OCTA는 ‘여유’의 한계를 끌어올린 차다. 고성능이라는 단어의 전통적 정의를 비켜선다. 더 낮고 더 가볍고 더 예민하게 만들어 운전자를 시험하는 방향이 아니라, 오프로더의 태도를 유지한 채 속도의 영역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이 차의 매력은 짜릿함보다는 여유다. 빠름을 원하지만 퍼포먼스 SUV의 긴장감은 원치 않는 사람, 험로의 상징성을 좋아하지만 일상에서의 공간과 쓰임새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차가 나를 재촉하지 않는 빠름을 이해하는 사람에겐 제격이다. 원래 운전 하던 대로 타도 된다. 훨씬 여유로워졌으니까.
디펜더 OCTA의 가격은 2억2,497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