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크기와 활용성 갖춘 정통 아메리칸 픽업
-547마력 허리케인 엔진에 기대 이상의 승차감까지
차봇모터스의 선택은 이번에도 평범하지 않았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를 국내에 들여온 데 이어 이번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풀사이즈 픽업인 램 1500을 선택했다. 두 차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향하고 단순한 이동보다는 모험과 레저, 아웃도어 라이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조금 더 터프하고 조금 더 거친 환경을 즐길 줄 아는 자동차다. 그런 면에서 램 1500은 차봇모터스의 두 번째 선택으로 제법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물론 램이라는 이름은 국내 소비자에게 아직 생소하다. 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램은 과거 닷지 램(Dodge Ram)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던 차다. 1981년부터 닷지의 픽업트럭을 대표했고 이후 픽업 사업이 별도로 분리되면서 독립적인 램 브랜드가 탄생했다. 지금은 램이 픽업트럭과 상용차를 담당하고 닷지는 머슬카와 고성능 자동차에 집중하는 형태다.
램의 세계는 숫자로 구분하면 이해하기 쉽다. 대표적으로 1500과 2500, 3500 등이 있으며 뒤로 갈수록 더욱 강력한 작업 능력을 갖춘 헤비듀티 영역으로 확장된다. 특히, 3500쯤 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레저용 픽업의 범주를 넘어선다. 거대한 카라반을 끌거나 농장에서 여러 마리의 말을 운반하는 트레일러를 연결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일과 레저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국식 헤비듀티 트럭의 세계다.
그중 1500은 램 라인업의 시작점에 해당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국 기준이다. 한국 땅에 세워 놓는 순간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병행수입을 제외하고 정식 판매되는 픽업 가운데 단연 압도적인 체격을 자랑한다. 숫자상으로 크다는 사실을 알고 접근해도 실제 차를 마주하면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첫인상부터 강렬하다. 거대한 그릴이 앞모습 대부분을 뒤덮고 있으며 중앙에는 큼직한 RAM 레터링을 넣었다. 가로형 헤드램프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지만 차체 자체가 워낙 크다 보니 충분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입체적으로 다듬은 범퍼와 양 끝의 두툼한 견인고리도 정통 픽업의 성격을 숨기지 않는다.
백미는 보닛이다. 중앙을 파워돔 형태로 한껏 부풀렸고 거대한 에어덕트를 뚫어 놓았다. 운전석에서 바라봐도 봉긋 솟아오른 보닛이 시야에 그대로 들어온다. 이 부분만 떼어 놓고 보면 픽업보다는 미국산 하드코어 머슬카를 보는 듯하다. 얌전하거나 세련된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생각은 애초에 없어 보인다. 크고 강한 차라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하나의 디자인 언어로 당당하게 표현한다.





옆으로 이동하면 거대한 체격이 더욱 실감 난다. 길게 뻗은 휠베이스와 넉넉한 캐빈, 뒤쪽의 커다란 데크가 한눈에 들어온다. 차체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22인치 휠조차 과하다는 느낌이 없다. 오히려 적당해 보일 정도다. 휠하우스 주변에도 넉넉한 공간을 확보해 험로 주행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시승차는 리미티드 트림답게 무작정 투박함만 강조하지 않는다. 차체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면 플라스틱 사용을 최대한 억제했고 번쩍이는 장식과 세련된 마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미국식 픽업의 강인함 위에 고급스러움을 한 겹 덧씌운 모습이다.
사이드미러도 인상적이다. 공책 두 권을 겹쳐 놓은 듯 거대하고 이를 지탱하는 관절 역시 상당히 두껍다. 이유는 명확하다. 트레일러를 연결했을 때 뒤쪽 상황을 보다 넓게 확인하기 위해서다. 버튼을 누르면 사이드미러가 바깥쪽으로 확장되면서 시야를 넓혀준다. 단순히 덩치가 큰 장식물이 아니라 픽업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기능적인 결과물이다.
뒤쪽은 익숙한 픽업의 형태를 따르지만 자세히 보면 램 1500만의 아이디어가 숨어 있다. 대표적인 부분이 테일게이트다. 일반적인 픽업처럼 위아래로 여는 것은 물론 양문형 냉장고처럼 좌우로 나눠 열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짐을 싣고 내리는 방법을 달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데크 양쪽에는 별도의 깊은 수납공간도 마련했다. 긴 적재함 하나만 던져주고 알아서 사용하라는 방식이 아니다. 작은 물건부터 각종 레저 장비까지 종류에 따라 나눠 보관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공간을 쪼갰다. 픽업이라는 장르가 공간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주변에는 트레일러 연결을 위한 각종 소켓과 장치가 빼곡하고 데크에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전용 발판도 마련했다. 조명과 카메라는 물론 뒤쪽 유리창을 별도로 열어 환기할 수도 있다. 여기에 성인 팔뚝이 그대로 들어갈 듯한 거대한 듀얼 배기구까지 더해지면서 램 특유의 존재감을 완성한다.
중앙에 자리 잡은 램 로고도 차의 성격을 잘 표현한다. 이름 그대로 숫양의 머리를 형상화했다. 거대한 뿔을 앞세워 거친 자연환경을 살아가는 숫양의 강인한 이미지는 램 픽업이 추구하는 방향과 절묘하게 겹친다. 이름부터 로고, 자동차의 성격까지 하나의 메시지로 연결되는 셈이다.
문을 열면 또 한 번 반전이 기다린다. 실내는 예상보다 훨씬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동시에 버튼이 많고 기능적이다. 최근 자동차들이 모든 기능을 화면 속으로 밀어 넣는 것과 달리 램 1500은 필요한 기능이라면 기꺼이 물리 버튼을 남겨둔다.
시동 버튼 아래에는 다이얼 형태의 전자식 변속 레버가 자리하며 주변으로 구동계를 설정할 수 있는 각종 버튼을 배치했다. 센터페시아에는 세로형 대형 디스플레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차의 각종 기능을 화면 안에서 쉽게 확인하고 조작할 수 있으며 자주 사용하는 공조 기능은 양옆에 물리 버튼으로 따로 빼놨다. 화려함과 직관성을 동시에 챙기려는 구성이다.
트레일러 관련 기능은 더욱 본격적이다. 연결부를 정확하게 비춰주는 카메라부터 체결 이후 운전을 도와주는 다양한 기능까지 준비돼 있다. 이처럼 램 1500은 평범하게 견인력이 얼마인지 숫자로 자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트레일러를 달고 움직이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편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운전자 앞에는 큼직한 풀 디지털 계기판이 자리한다. 화면 구성이 깔끔하고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조수석에는 별도의 패신저 디스플레이까지 넣었다. 탑승자가 주행 중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일부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픽업에서도 디지털 경험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공간 활용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특히, 센터터널을 보면 미국 사람들이 왜 큰 차를 좋아하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앞뒤로 움직이는 슬라이딩 구조를 활용해 상황에 따라 공간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고 컵홀더와 수납함은 하나같이 깊고 넓다. 콘솔박스 역시 두 단계로 열리며 내부 공간이 상당하다.
마음먹고 물건을 채워 넣는다면 500㎖ 생수병 20~30개 정도는 충분히 받아낼 것처럼 보인다. 글로브박스와 도어 안쪽의 수납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물건 하나를 어디에 둘지 고민해야 하는 차가 아니라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릴까 걱정해야 하는 차다.
세심함이 돋보이는 편의품목도 부족함이 없다. 디지털 룸미러는 거대한 차체와 데크 너머의 후방 시야를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며 하만카돈 서라운드 오디오 시스템은 고급 픽업이라는 성격을 강조한다. 곳곳을 감싼 가죽과 웨이브 형태의 스티치 장식 역시 실내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천장에는 선루프와 햇빛가리개, 뒤 유리창 등을 조작할 수 있는 버튼을 각각 마련했다. 열선과 통풍 기능은 기본이며 큼직한 헤드업 디스플레이 역시 시원스럽다.
2열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광활하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바닥 중앙의 턱이 사실상 없어 성인 세 명이 앉아 장거리를 이동하기에도 부담이 적다. 시트에는 리클라이닝 기능까지 마련해 픽업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전용 송풍구와 충전단자도 충실하고 거대한 파노라마 선루프가 개방감을 더한다. 높은 시트 포지션 덕분에 덩치 큰 차의 뒷좌석임에도 답답한 느낌이 없다.





1열과 마찬가지로 공간을 활용하는 솜씨도 대단하다. 바닥에는 별도의 깊은 수납공간이 숨어 있고 더 큰 짐을 넣고 싶다면 시트 바닥을 위로 접어 올리면 된다. 실내와 적재함을 모두 활용하기 시작하면 웬만한 레저 장비를 싣기 위해 테트리스하듯 고민할 필요가 없겠다. 여러모로 압도적인 픽업이라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어본다. 국내 판매되는 램 1500의 핵심은 허리케인 고출력 가솔린 엔진이다. 과거 램의 상징과 같았던 거대한 V8 헤미 엔진의 자리를 보다 작고 효율적인 6기통 트윈터보가 대신한다. 여기에 토크플라이트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547마력, 최대토크 72㎏·m의 힘을 발휘한다.
배기량과 실린더 수는 줄었지만 힘은 오히려 강해졌다. 그래서 8기통의 부재를 아쉬워할 틈도 없이 거대한 차체를 앞으로 밀어붙인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램 1500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시원스럽게 튀어나간다. 터보 엔진 특유의 답답한 지연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배기량 큰 자연흡기 엔진처럼 페달을 밟는 만큼 힘이 자연스럽게 쏟아진다. 폭발적인 소리와 진동으로 운전자를 자극하는 방식은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계기판을 바라보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숫자가 찍혀 있는 식이다.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롭다. 강력한 미국산 픽업이라면 으레 시끄럽고 거칠며 차체를 뒤흔들면서 앞으로 뛰쳐나갈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램 1500은 정반대다. 풍부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과시하지 않는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힘을 품은 채 여유롭게 이동하는 데 더욱 집중한다.
8단 자동변속기도 마찬가지다. 번개처럼 빠른 변속을 보여주는 타입은 아니다. 대신 지금 어떤 단수를 선택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변속 충격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부드러운 엔진 회전질감과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춘다. 덕분에 547마력이라는 숫자가 부담스럽지 않다. 강한 힘을 편안하게 다루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승차감이다.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픽업을 타봤지만 램 1500만큼 편안한 차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바디 온 프레임 기반의 거대한 픽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놀랍다. 물론 에어 서스펜션의 역할이 크다. 하지만 단순히 에어 서스펜션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차체와 서스펜션, 휠과 타이어가 서로 어우러지는 방식 자체가 상당히 세련됐다. 작은 요철은 부드럽게 걸러내고 큰 충격 역시 한 번에 둥글게 다듬어 전달한다. 빈 적재함을 가진 픽업에서 흔히 경험하는 뒤쪽의 통통 튀는 움직임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이는 오랜 시간 픽업이 자동차 시장의 중심에 있었던 미국에서 다양한 환경과 소비자를 상대하며 쌓은 노하우가 여기에서 드러나는 듯하다. 단순히 튼튼하게 만드는 것과 튼튼하면서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램은 상당한 내공을 갖고 있다.
덕분에 운전하다 보면 어느 순간 픽업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거대한 적재함을 뒤에 매달고 다니는 작업용 자동차보다는 레저 활동에 최적화한 대형 프리미엄 SUV에 가깝게 느껴진다. 부드럽게 힘을 내는 파워트레인과 푹신하면서도 안정적인 승차감이 만나면서 시너지 효과도 상당하다.
물론 물리적인 크기까지 감출 수는 없다. 높은 무게중심 때문에 코너에서 날렵한 움직임을 기대하기 어렵고 차체는 어느 정도 롤을 허용한다. 스티어링 반응 역시 스포츠 SUV처럼 예민하지 않고 한 박자 여유롭게 움직인다. 하지만 이를 단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램 1500은 애초에 와인딩 로드의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태어난 차가 아니다. 거대한 짐을 싣고 트레일러를 연결하고 때로는 포장도로를 벗어나 먼 곳으로 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오히려 지금의 느긋하고 안정적인 움직임이 차의 목적에 더 잘 어울린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매일 험로를 달리거나 거대한 트레일러를 연결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평일에는 도심을 오가고 주말이면 가족과 짐을 가득 싣고 캠핑장이나 자연으로 향하는 시간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온로드에서의 편안함까지 제대로 챙긴 램 1500의 방향은 상당히 영리하다.





정리를 해보면 램 1500을 처음 마주하면 크기에 압도된다. 거대한 그릴과 솟아오른 보닛, 엄청난 사이드미러와 드넓은 적재함을 보고 있으면 전형적인 미국산 풀사이즈 픽업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547마력이라는 숫자까지 확인하면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거칠고 강하며 투박한 차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으면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힘은 넘치지만 과시하지 않고 승차감은 픽업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부드럽다. 실내는 웬만한 고급 SUV 부럽지 않게 화려하며 2열 공간은 광활하다. 여기에 기발할 정도로 다양한 수납공간과 적재함, 트레일러 특화 기능까지 갖췄다. 터프함이라는 램의 본질은 그대로 두면서 현대 소비자가 원하는 편안함과 고급스러움을 능숙하게 섞어냈다.
그래서 램 1500의 진짜 매력은 547마력도, 거대한 차체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을 너무나 여유롭게 다룬다는 데 있다. 힘을 굳이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강한 사람처럼 램 1500 역시 자신의 능력을 요란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필요할 때 가속페달을 밟으면 거침없이 달려나가고 길이 끝나는 곳에서는 네바퀴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짐이 많으면 거대한 데크에 던져 넣고 더 큰 무언가를 가져가고 싶다면 뒤에 연결하면 그만이다.
평일에는 고급 SUV처럼 편안하게 움직이고 주말에는 가족과 온갖 레저 장비를 싣고 도심 밖으로 훌쩍 떠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램 1500의 거대한 차체는 부담이 아니라 가능성이 된다. 남들이 가지 못하는 곳에 갈 수 있고 남들이 가져가지 못하는 것을 가져갈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거대한 트레일러까지 끌 수 있다. 자동차 한 대가 일상의 반경 자체를 넓혀준다.
그레나디어에 이어 램 1500을 선택한 차봇모터스의 안목이 다시 한번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차 모두 모두에게 필요한 자동차는 아니다. 대신 원하는 사람에게는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명확한 이유를 제공한다.
램 1500은 크고 강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크고 강한 것을 다루는 방식이다. 거칠어 보이는 외모 안에는 의외의 섬세함이 있고 넘치는 힘 뒤에는 느긋한 여유가 숨어 있다. 진짜 강한 차는 매 순간 힘을 자랑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램 1500은 그것을 가장 미국적인 방법으로 보여주는 픽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