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경쟁 뒤에서 커지는 부품·기술 시장
-반도체·SW부터 타이어까지 존재감 확대
184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됐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이듬해 수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로 몰려들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서부개척시대. 골드러시다.

모두가 금을 찾아 나섰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도 있었다. 직접 금을 캐는 대신 몰려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파는 이들이었다. 대표적인 회사가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리바이스다.
리바이스에 따르면 창업자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1853년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의류와 직물 등을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재단사 제이콥 데이비스와 함께 작업복에 금속 리벳을 적용했고 1873년 관련 특허를 취득했다. 오늘날 청바지의 시작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청바지의 역사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금맥을 찾아 뛰어들 때 이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공급하는 것도 하나의 거대한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요즘 자동차 산업을 보면 170여 년 전 캘리포니아가 떠오른다.
전기차라는 금맥을 찾아 수많은 완성차 기업이 뛰어든 요즘이다. 시장 규모도 충분히 커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20% 증가한 2,000만대를 넘어섰다. 세계에서 판매된 신차 네 대 가운데 한 대가 전기차였다는 의미다.
이럴 때 주목해야 할 곳은 완성차 회사만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에게 필요한 곡괭이와 삽을 파는 부품·기술 기업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금맥까지 등장했기에 더욱 그렇다.

자동차 산업에서 엔비디아의 존재감이 커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자동차의 성능을 결정하는 것이 엔진과 변속기였다면 이제는 차 안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느냐도 중요한 경쟁력이 됐다. 자율주행과 생성형 AI,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이 발전할수록 이를 처리하는 반도체와 고성능 컴퓨팅 플랫폼의 중요성도 커진다.
실제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의 성장 속도는 완성차 시장을 크게 앞지를 전망이다. S&P글로벌모빌리티는 지난해 900억달러를 넘어선 세계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이 2031년 약 1,40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4년부터 2031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7.4%다. SDV와 자율주행, 전동화, 디지털 콕핏 확대가 시장 성장을 이끄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맥킨지의 분석도 비슷하다. 맥킨지는 세계 자동차 소프트웨어·전자부품 시장이 2030년 4,620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2019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5.5%다. 같은 기간 승용차와 경상용차 시장은 연평균 약 1%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분야별로 보면 차이는 더욱 커진다. 자동차 소프트웨어 시장은 2019년 310억 달러에서 2030년 약 80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전력전자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23%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생산량 자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더라도 자동차에 탑재하는 전자부품과 소프트웨어의 양과 가치는 계속 증가한다는 얘기다.

전통적인 부품사들도 이 변화를 잘 알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보쉬다. 브레이크와 조향장치, 각종 센서와 엔진 부품 등을 만들어온 이 회사의 미래 전략을 보면 자동차 부품사의 역할이 어디까지 확대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보쉬는 2030년대 초까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에서 연간 60억 유로 이상의 매출을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가운데 약 3분의 2를 모빌리티 사업에서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소프트웨어와 센서, 고성능 컴퓨터, 네트워크 부품을 합친 매출은 2030년대 중반까지 두 배 이상 늘려 100억유로를 훌쩍 넘긴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보쉬가 소프트웨어 회사로 완전히 변신하려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자동차라는 제품의 특성 때문이다. AI가 자동차 주변을 아무리 정확하게 인식해도 실제 차를 세우는 것은 브레이크다. 컴퓨터가 이동 경로를 판단해도 방향을 바꾸려면 조향장치가 움직여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컴퓨터의 판단을 현실의 움직임으로 바꿔주는 부품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리고 타이어는 이 같은 특징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부품이다. 내연기관차든 전기차든 타이어는 필요하다. 사람이 운전하든 AI가 운전하든 마찬가지다. 엔진과 변속기는 사라질 수 있고 기계적인 연결 장치는 바이와이어 기술로 대체될 수 있지만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이상 타이어와 노면의 접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규모도 상당하다. 미국타이어제조협회(USTMA)는 올해 미국에서만 3억3,890만개의 타이어가 출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승용차용 신차 타이어는 4,160만개지만 교체용 승용차 타이어는 2억2,560만개에 달한다. 차가 한 번 팔린 이후에도 타이어 시장은 계속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콘티넨탈의 사업 구조에서도 이런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회사가 공개한 2025년 실적에 따르면 타이어 사업 매출 가운데 완성차 제조사에 공급하는 신차용 비중은 24%였다. 나머지 76%는 교체용 타이어에서 나왔다. 완성차 판매가 주춤하더라도 이미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가 타이어 수요를 만들어주는 구조다.
과거에는 완성차 회사가 설계한 자동차에 정해진 규격의 부품을 납품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다면 앞으로는 다르다. 반도체의 연산 능력이 자율주행 수준을 결정하고 센서의 성능이 자동차가 볼 수 있는 범위를 좌우한다. 소프트웨어와 액추에이터의 결합은 자동차가 움직이는 방식까지 바꾼다. 타이어 기술은 마지막 순간 그 모든 성능을 노면으로 전달한다.
물론 모든 부품사가 골드러시의 승자가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동화로 사라지는 부품도 있고 완성차 기업의 자체 개발이 확대되면서 설 자리를 잃는 업체도 생길 것이다. 자동차 생산량과 원가 절감 압박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완성차 회사가 전기차 시장을 장악할지, 어느 기업의 자율주행 기술이 표준이 될지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누가 이기든 반드시 필요한 것들도 있다.
전기차에는 전력반도체가 필요하고 자율주행차에는 고성능 컴퓨터와 센서가 필요하다. SDV에도 브레이크와 조향장치가 있어야 하고 마지막에는 네 개의 타이어가 도로와 맞닿아야 한다.
170여 년 전 캘리포니아에서도 누가 금을 발견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금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에게 튼튼한 옷과 장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자동차판 골드러시도 비슷하지 않을까.
미래 자동차의 승자가 누구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이 무엇을 사야 하는지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