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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경계에서

입력 2026-09-25 00:00 수정 2026-09-25 09:10


-망치 두드리는 독일 공장과 소리 없이 달리는 전기트럭
-독일의 '축적'과 중국의 '속도'..우리의 답은 무엇인가

 

 독일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묘하게 공존하는 나라다. 산업혁명에서는 영국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화학과 전기, 기계공업을 빠르게 발전시키며 후발주자의 격차를 좁혔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분단을 겪은 뒤에도 이미 갖고 있던 기술과 숙련의 토대 위에서 제조업을 다시 일으켰다.

 전후 서독의 경제성장을 일컫는 '라인강의 기적' 역시 하루아침에 없던 산업이 생겨난 결과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축적해온 기술과 숙련 인력, 산업 기반 위에 새로운 제도와 투자가 더해지며 다시 경쟁력을 만들어냈다.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고 해서 사람의 숙련이 곧바로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하노버와 뮌헨에서 본 두 장면도 그랬다. 하노버에서 열린 IAA 트랜스포테이션에서는 소리 없이 전기트럭이 움직이고 있었고 만트럭의 뮌헨 공장에서는 작업자가 여전히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하나는 미래처럼 보였고 다른 하나는 과거처럼 보였다.

 

 하지만 둘 사이에 선을 긋기는 어려웠다. 만트럭은 BMW의 항공기 엔진 공장을 인수한 뒤로부터 운영 중인 그 오래된 곳에서 전기트럭도 만들고 있다. 오래된 생산설비와 작업자의 경험 위에 배터리와 전기모터가 올라가고, 사이드미러는 카메라로 바뀌며 차는 점점 소프트웨어와 연결되고 있다.

 

 최근 독일 자동차 산업을 두고 위기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전동화 전환의 부담은 커졌고 중국 업체들은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독일은 손 놓고 과거의 영광만 되짚고 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적어도 상용차에서는 자신들이 오랫동안 잘해온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새로운 시대에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70년 가까이 트럭을 만들어온 공장을 하루아침에 최첨단 무인공장으로 바꾸는 대신 사람의 숙련과 자동화가 각각 가장 효율적인 지점을 찾고 있었다. 디젤트럭을 만들며 축적한 경험 역시 전기트럭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독일 나름의 해법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해진 것은 아니었다. 이번 IAA에서는 그 경계를 무서운 속도로 넘어오는 중국 업체들도 만났다. BYD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은 전기 상용차뿐 아니라 자율주행과 배터리 교환, 수소 기술까지 거침없이 꺼내 들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중국 업체 관계자는 자국에서 레벨4 자율주행 트럭을 운행하고 배터리 교환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했다.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자 답은 짧았다. "중국은 가능하다." 자신감은 대단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감탄보다 여러 의문이 먼저 떠올랐다. 배터리를 통째로 바꾸는 트럭을 시장은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일까. 운전자가 필요 없는 레벨4 트럭을 물류업계와 사회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수소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수소 하이브리드처럼 생소한 기술은 실제 운송 현장에서 어떤 경제성을 보여줄까.

 

 그런 생각부터 한 것이 새로운 것을 경계하는 기자의 괜한 의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을 만들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산업의 표준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동차의 역사를 돌아보면 뛰어난 기술이라고 해서 언제나 살아남은 것도 아니었고, 먼저 내놓았다고 해서 반드시 시장을 차지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기술은 가격과 신뢰성, 인프라, 사용 경험이라는 현실을 통과해야 한다.

 

 그 점에서 유럽과 중국의 대비는 흥미로웠다. 오랜 시간 검증하고 개선하면서 기술을 축적해온 유럽과 일단 빠르게 시도하고 규모를 키워가는 중국. 한쪽은 너무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고 다른 한쪽은 너무 빠르다는 시선을 받는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래됐다고 뒤처진 것도 아니고 새롭다고 반드시 앞서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은 새로운 기술과 결합할 때 강력한 자산이 된다. 반대로 그 경험이 변화하지 않을 이유가 되는 순간 짐이 된다. 새로운 기술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산업의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검증되고 실제 비용을 낮추며 사람의 일을 더 편하게 만들 때 비로소 산업이 된다.

 

 그리고 독일과 중국을 번갈아 바라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됐다. 승용차에서는 세계 시장을 이야기하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지만 상용차로 시선을 옮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동화와 자율주행, 수소를 놓고 세계 업체들이 각자의 답을 내놓는 동안 우리는 상용차의 다음 시대를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가.

 

 독일에는 축적된 제조업의 시간이 있었고 중국에는 무서울 정도의 실행 속도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는 것은 무엇인지, 또 무엇을 무기로 삼아야 하는지 쉽게 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 독일 출장에서 얻은 결론은 의외로 명쾌하지 않다.

 

 하노버에서 미래를 먼저 봤고 뮌헨에서는 그 미래를 떠받치는 과거를 봤다. 중국 업체들의 전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미래를 봤고, 그 사이에서 한국 상용차 산업의 현재까지 생각하게 됐다.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다. 중요한 것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오래된 것에서 무엇을 남기고, 새로운 것 가운데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능력이다.

 

 독일은 지금 위기라는 평가 속에서도 그 답을 찾고 있었다. 중국은 자신들의 답이 맞는다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우리의 답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독일을 떠나며 머릿속에 남은 것은 화려한 신기술 하나가 아니었다. 하노버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던 전기트럭과 뮌헨의 오래된 공장에서 들려오던 망치 소리였다. 망치와 전기모터. 축적과 속도. 과거와 미래. 그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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