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구분 시대 사라져
1974년 1월 14일 정부가 긴급조치를 선포했다. 이른바 1·14 경제조치다. 이때 부자들의 이동 비용은 크게 인상됐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와 기차의 통행세는 면제를 유지했지만 택시는 50%를 높였고 장거리를 오가는 고속버스도 통행세 면제를 중단시켰다. 이때만 해도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을 오가는 사람은 이른바 부자(?)가 많았던 탓이다.

승용차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개별소비세율로 불리는 당시 물품세율을 배기량 1,700㏄까지는 33.3%, 2,000㏄까지는 66.6%, 2,000㏄ 초과는 233.3%로 높였다. 인상되는 물품세율을 적용할 때 공장도가격 기준으로 당시 시보레는 176만 원에서 189만 원(7.6%), 레코드는 263만 7,000원에서 304만2,000원(15.3%)으로 올랐지만 실제로는 더 비싸졌다. 물품세율 외에 해외에서 조달하는 자동차 부품의 관세 감면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수입 승용차도 관세와 물품세율을 높였는데 3,000㏄급 벤츠의 경우 2,055만7,000원에서 4,544만 원으로 121%가 올랐다. 이때 기준으로 국산 고급차(레코드)와 수입 고급차(벤츠)의 가격 차이는 17배에 달했다. 그러니 수입차는 아무나 타는 차가 아니었고, 어딘가 서 있기만 해도 동네 전체의 부러움 대상이었다. 한마디로 수입차는 아예 수입조차 하지 말고 타지도 말라는 정책이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의 수입차는 공식적인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반입된 직수입 외제차의 가격만 해도 각종 세금이 얹히며 당시 서울의 최고급 아파트 1~2채 값과 맞먹는 약 2,000만 원~8,500만 원에 달했다. 1978년 기준 최고급 국산 조립차이자 부의 상징이었던 현대자동차 '그라나다' 공식 출시 가격이 1,154만 원이었는데, 이는 당시 압구정 현대아파트 37평형(또는 잠실 주공 23평형) 분양가와 비슷했다. 벤츠나 최고급 외제차를 국내에 들여와 번호판을 달기까지 들어가는 비용은 강남 아파트 2채~4채를 살 수 있는 엄청난 거액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1987년부터 수입차 시장이 개방됐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한국차가 해외에 본격 진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입 관세율이 50%여서 수입차 가격은 비쌌다. 물론 어차피 비쌌기 때문에 들여오는 브랜드도 대부분 프리미엄에 집중됐다. 흥미로운 점은 이때 일본차는 예외였다는 사실이다. 대일 무역적자가 심해 일본산 완성차는 수입을 제한했다. 하지만 일본산만 언제까지나 막을 수 없었기에 1999년 6월에 이를 폐지했고 이때부터 일본산 자동차도 한국에 서서히 유입됐다.

이후 시간이 25년가량 흘렀다. 지속적으로 가격이 오른 국산차와 반대로 내려간 수입차의 간격은 이미 충분히 좁혀졌다. 게다가 국산차도 프리미엄 브랜드가 등장하며 고급 수입차 못지않은 가격을 형성한다. 한마디로 국산차와 수입차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의미다. 특히 BEV(배터리 전기차)를 두고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 게다가 가격 차이도 별로 없어 수입차는 국산차 점유율을 최대한 빼앗으려 하고, 국산차는 시장을 내주지 않는 데 모든 힘을 쏟는다. 하지만 자꾸 점유율을 내주는 현상이 나타난다. 아울러 과거처럼 애국심에 호소해도 별 소용이 없다. 요즘 소비자들은 애국이 아니라 자신의 합리성에 따라 제품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한 탓이다.
위기를 감지한 국산차는 최대한 서둘러 판매 차종의 다양화를 이뤄내려 한다. 동시에 자율주행의 적극 도입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 새로 추가하는 여러 차종에 동시다발적으로 자율주행을 넣어 특정 계층보다 폭넓은 수요를 만들어 내려 한다. 그래서 국산 BEV가 시장에 대거 쏟아질 전망이다. 그렇다고 수입 BEV가 호락호락 가만있지는 않을 태세다. 한국의 전기차 소비 트렌드 자체가 엄청 다채롭게 변해가고 있어서다. 이 말은 이제 진정한 경쟁의 서막이 올랐다는 것이고 소비자는 치열한 경쟁을 흐뭇하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경쟁은 곧 소비자 이익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부러움의 상징이었던 수입차, 이제는 말 그대로 원산지 개념일 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