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했던 불운아가 마침내 맞이한 별의 순간”
스타 배우와 현실감 넘치는 레이싱 씬으로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달구고 있는 영화 ‘F1’이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 흥행에 힘입어 F1에서 일했던 나에게까지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있는 걸 보면 문화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오랜 F1 팬들은 영화 속 주인공과 독일 출신 베테랑 드라이버 니코 훌켄버그의 실제 스토리를 자연스레 겹쳐서 보고 있다. 특히, 브래드 피트가 연기하는 소니 헤이스가 커리어 후반부에 화려하게 재기하는 영화 설정은 사우버에서 진짜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니코와 절묘하게 오버랩되어 보인다.
니코는 ‘포디움 피니쉬 없는 최다 그랑프리 출전(239번)’이라는 씁쓸한 기록의 주인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010년 F1 풀시트 드라이버로 데뷔한 이래 2025년 현재까지 F1 커리어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그가 거쳐간 팀 만해도 여섯 곳이나 된다. 나와 같은 팀에도 있었던 터라 나는 그의 인성과 태도를 기억한다. 성실한 차 피드백과 꾸준한 노력, 그리고 중위권 팀에서 기적 같은 퍼포먼스를 뽑아내는 능력 덕분에 그는 계속해서 F1 팀들의 신임을 받아왔다.
마땅한 드라이버 대안이 없을 때, 팀들은 항상 니코 훌켄버그를 해결사로 모셨다. 정식 드라이버 계약을 따지 못했던 2020년, 나는 ‘니코의 여정도 여기까지구나’ 아쉬워했지만 그는 곧 부활했다. 그리고 2025년, 마침내 실버스톤 그랑프리에서 15년만에 첫 포디움 피니시를 만들어내며 오랜 시간 자신을 따라다닌 ‘아깝다’ 이미지를 떨쳐냈다.
영화 ‘F1’은 고된 과정을 딛고 재기에 성공하는 베테랑 드라이버를 다룬 클리쉐 가득한 서사다. 영화 속 소니 헤이스가 시련과 세대교체, 팀 내 변화 속에서 끈질기게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듯, 니코 역시 미드필드 팀을 돌며 정식 드라이버, 예비 드라이버, 무수한 부침을 경험하고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어 마침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특히, 니코는2023~2024 시즌 실전을 배경 삼아 여러 실제 F1 드라이버와 함께 스크린 속 한 장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허구와 현실을 잇는 이 접점은 근래 보기 드문 우연이다. 현재 사우버 F1 소속으로 2025 시즌을 치르고 있는 니코는 내년 제 2의 독일 F1 팀 , 아우디 F1을 이끌 예정이다. 올 시즌 중반까지 41포인트를 획득하며 드라이버 챔피언십 9위에 올라 있다.
그의 순위 상승은 결코 관성이나 동정표가 아닌 정교한 추월, 영리한 대응, 젠틀맨십, 그리고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이 모든 장면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펼쳐지며 그만의 진짜 드라마를 써내려가고 있다.
2025년 박수를 받는 이는 브래드 피트만이 아니라 실제로 달리고 살아남고 그리고 결국 보상을 쟁취한 진짜 F1 베테랑, 니코 훌켄버그다.
김남호 F1 동력학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