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틀린 논리'의 상관관계
-이해하기 쉬운 결론, 얼마나 위험한가
“벤츠는 이제 중국차다."

자동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벤츠라는 브랜드명에 중국을 비하하는 다소 고약한 단어까지 조합해가며 깎아 내리기에 바쁘다. 이들의 논리는 뙈 다양한데 디자인은 낯설어졌고 중국과의 협업은 늘었으며, 지분 구조를 들여다보면 중국 자본이 눈에 띈다는 것을 이유로 든다.
틀린말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 사실들이 어떤 맥락에서 읽히고 어떤 기준으로 재단되느냐다. 그 자체는 거짓이 아닌데 해석의 방향이 단선적으로 굳어지는 순간 판단은 쉽게 왜곡된다. ‘중국과 연결됐다’는 정보는 곧장 ‘중국에 지배된다’는 결론으로 건너뛰고, 전략적 협업은 종속으로, 지분 참여는 지배권 행사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필요한 설명은 사라지고 자극적인 낙인만 남는다는 것이다. 산업 구조와 지배구조를 구분하지 않고 투자와 경영권을 같은 선상에 놓는 순간 논의는 분석이 아니라 감정의 문제가 된다. 해당 칼럼을 통해 명확한 사실을 왜곡된 시각으로 받아들일 때 어떤 오해가 만들어지는지, 그 오해가 얼마나 손쉽게 ‘그럴듯한 결론’으로 굳어지는지를 짚어보려 한다.
먼저 인정의 부분이다. 요즘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인은 갈피를 잡지 못한 인상을 받는다. '패턴'처럼 수놓은 삼각별 로고에 대한 거부감, 부풀린 그래픽, 이전 세대와의 단절, 우리가 떠올리던 ‘벤츠다움’과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그 과정에서 일부 제품이 중국 브랜드의 과시적 디자인 언어와 겹쳐 보였다는 평가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중국차 회사에서 공급받는다며 퍼지고 있는 내용은 맥락없이 떼어 놓으면 오해가 생긴 사례다. 정확히는 르노그룹과 지리의 합작사 호스파워트레인이 공급하는 제품이다. 르노코리아와 볼보, 닛산, 미쓰비시 등도 이곳에서 파워트레인을 공급받고 있다.
르노와 벤츠가 오랜 기간 소형차 엔진 분야에서 협력해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특별히 낯설 일도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벤츠 GLA에 탑재되던 1.3ℓ 터보 가솔린 엔진이 르노 아르카나(XM3)에도 얹어진 일이다. 당시 이를 두고 “르노가 벤츠가 됐다”거나 “프랑스차가 독일차가 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벤츠=중국차' 논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재료는 많기도 많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최대주주는 한성자동차이고, 한성자동차의 최대주주는 말레이시아계 화교 자본이다. 지리 회장은 벤츠의 개인 주주 가운데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지금 중국이, 지리홀딩스가 메르세데스-벤츠AG에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나? 답은 명확하다. 아니다.

벤츠의 본사는 여전히 독일 스투트가르트에 있다. 본사가 중국으로 옮겨간 적도 없고 경영의 최종 결정권이 중국으로 넘어간 적도 없다. 지분 구조를 보더라도 중국계로 묶이는 주요 주주는 각각 10% 안팎의 지분을 보유한 전략적 투자자에 가깝다. 단일 주주나 컨소시엄이 과반 지분을 확보해 지배권을 행사하는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지분 참여와 지배권은 다른 개념이다.
한 가지 사례를 보자. 현대자동차는 리막의 지분을 취득한 전략적 투자자다. 이 논리대로라면 현대차는 리막의 지배구조 아래 있는 부가티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대차는 리막의 최대주주도 아니고 부가티의 본사나 생산 시설을 양재동이나 울산으로 옮겨올 수도 없다.
실제로 “현대차가 리막 지분을 가졌으니 부가티도 현대차 영향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왜일까. 지분과 지배의 차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을 벤츠에만 다르게 적용했고 그 순간, 논리는 감정으로 바뀐다.

더 나아가 중국과 깊어지는 건 벤츠만의 일이 아니다. 볼보와 로터스는 이미 중국 자본이 지배구조의 핵심에 들어와 있다. 아우디는 연구개발과 생산, 브랜딩 일체를 중국에서 하는 '새로운 아우디'를 론칭하며 네 개의 링을 쓰지 않는 전략까지 선택했다. 미국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뷰익과 링컨 역시 중국에서 더 많이 팔리거나 최소한 미국과 비슷한 규모로 판매된다.
그렇다고 해서 볼보를 곧바로 중국차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아우디를 독일 브랜드가 아니라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미국차 브랜드가 중국에서 더 잘 팔린다고 해서 국적이 바뀌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결국 이 논쟁의 본질은 국적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벤츠다움’과 최근 벤츠의 행보 사이에 생긴 괴리감이다.
그 불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디자인은 과장됐고 브랜드 언어는 흐릿해졌으며 예전만큼 설득력이 강하지 않은 차도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이 지점에 대한 비판은 유효할 수 있지만 그 비판의 결론이 “중국차 다 됐다”라는 조롱으로 끝나는 순간 논의는 산업 분석이 아니라 감정 배설에 가까워진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