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영국, 한국, 일본 자동차 동맹 구축
EU가 중국산 BEV에 최대 45.3%의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자 중국산 BEV의 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U는 나름의 정책적 효과를 거두었다며 박수를 친다. 하지만 방패 효과는 부분적이다. 중국이 관세 장벽이 낮은 PHEV 시장을 뚫어버린 탓이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포스에 따르면 지난 6월 중국 브랜드의 유럽 내 PHEV 판매 점유율은 34%를 차지했다. 덕분에 전체 신차 시장에서 중국산 완성차 점유율도 11%에 달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유럽이다. 관세로 BEV의 담장을 높였지만 PHEV는 내연기관에 포함돼 보조금 차등이 적용되지 않아서다. BEV와 달리 PHEV는 유럽 제조사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줄 수단이 없다. 게다가 유럽의 불황은 자동차 구매를 결정짓는 항목에서 ‘가격’을 최우선으로 밀어 올렸다. 적게는 1,500만원, 많게는 2,500만원까지 저렴한 중국산 PHEV에 유럽 브랜드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실제 동급으로 평가되는 BYD의 씰(Seal) U DM-i와 폭스바겐 티구안 e하이브리드(PHEV) 가격 차이는 1,800만원이다. 하지만 티구안에 BYD 만큼의 옵션을 적용하면 가격 차이는 더 벌어진다. 이대로 놔두면 PHEV는 중국산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
위기를 실감한 EU의 선택은 PHEV와 BEV에 모두 적용되는 배터리 공급망이다. 중국을 배제한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해 이를 기반으로 유럽산 배터리에 보조금을 지급, 중국산을 배제한다는 전략이 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중국산에 공동 대응하자며 구축하려는 것이 EU, 영국, 한국, 일본 등의 4자 자동차 동맹이다. 한국, 일본, 영국차에 유럽산과 동등한 지위 및 관세 예외, 핵심광물 공동 조달권리를 부여하는 방안이다.
그러자 중국 기업들의 움직임도 발 빠르다. 유럽 브랜드가 내놓은 유럽 내 공장을 전략적으로 인수, 현지화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BYD는 헝가리, SAIC는 독일, Geely는 벨기에, Chery는 스페인에 생산 시설을 구축한다. 어떻게든 유럽에서 입지를 확대한다는 전략 하에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 시장을 뚫겠다는 야심이 가득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이 한국과 일본 브랜드를 동등 지위자로 격상시키는 동맹을 결성하려는 것은 차라리 한국 및 일본과 협력하는 게 중국보다 산업적 측면에서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일 자동차기업들은 유럽 내에 공장도 있지만 부품 공급망도 많아 중국 브랜드보다 EU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을 했다는 의미다. 이를 두고 보호주의가 이제는 국가 또는 지역을 떠나 산업적 연대로 전환되는 중이라는 해석이 고개를 든다.

물론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하지만 EU는 무역 장벽이 산업 정책과 분리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원산에 따른 시장 접근, 신뢰할 만한 파트너와 협력에 따른 보조금 지급, 전략적 제휴에 따른 원자재 협정, 그리고 여러 경제권에 걸쳐 조율된 무역 방어 등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대응책은 더욱 포괄적이다.
일부에선 EU의 새로운 자동차 동맹을 두고 세계 무역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시선도 보낸다. 하지만 선별적인 접근 방식, 즉 산업 파트너로서도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에게만 개방성을 확대하는 시스템은 향후 무역에서 대세의 형태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음을 내다보기도 한다. 특히 강력하게 떠오르는 중국 자동차의 공세를 막아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도 옅보인다.
한때 미국과 EU를 포함한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보호무역주의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며 각 나라의 자동차 시장 개방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 한국, 영국 등의 경쟁사들과 시장 보호를 함께 하자는 요구를 쏟아내는 중이다. 그만큼 중국차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졌음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맹 가입에 따른 위기도 분명 존재한다. 가입은 곧 중국에 대한 배척을 의미하는 탓이다. 비록 현대차·기아가 중국 시장에서 고전 중이라 해도 여전히 중국 내 현지 공장과 협력업체 생태계가 남은 데다 최근 중국 내 반등을 노리며 신차 등을 적극 출시한다는 점은 고민 거리다. 중국 정부가 미국 IRA 때처럼 한국산 완성차나 부품에 대해 강력한 비관세 장벽이나 제재를 가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처럼 어디서나 한쪽의 강요(?)를 받는 시대지만 이때의 선택이 한국차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함이 요구된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