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장인·현대 작가 48명, 160여 점 작품 한자리에
-과거와 현재 잇는 이음의 선, 한국 문화유산 전승 지원
보슬비가 내린 창덕궁은 어느새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듯했다. 뜨겁던 여름의 기운은 한풀 꺾였고 빗물을 머금은 고궁의 기와와 나무에서는 선선한 기운이 흘렀다. 그 길을 따라 낙선재 안으로 들어서자 시간이 잠시 느려지는 듯했다. 오래된 공간 사이사이에는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키며 한길을 걸어온 장인들의 작품이 놓여 있었다.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오랜 시간 쌓인 손끝의 흔적과 집념으로 존재감을 나타내는 작품들이다. 수없이 반복했을 작업과 세월을 견뎌온 기술,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남기겠다는 마음까지 작품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사이로 현대 작가들의 작품도 자연스럽게 자리했다.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해석한 결과물이다. 덕분에 전시는 과거를 회상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 문화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지금 어떤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어디를 향할지 한자리에서 보여줬다. 전통을 지키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것. 이날 낙선재에서 만난 ‘K-헤리티지 아트展, 이음의 선(線)’이 특별했던 이유다.
포르쉐코리아는 1일부터 6일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창덕궁 낙선재에서 ‘K-헤리티지 아트展, 이음의 선(線)’ 특별전을 연다. 지난 2022년부터 이어온 사회공헌 프로그램 ‘포르쉐 퓨처 헤리티지’의 일환으로 국가무형유산의 보존과 전승을 지원하고 전통 문화의 가치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몽로(夢路)-꿈의 길에 서다’다. 오랜 시간 자신의 길을 걸어온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와 이수자, 전통 장인들의 여정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실제로 전시장을 걷다 보면 ‘선’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제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낙선재에서 석복헌, 수강재로 이어지는 공간을 따라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전통에서 현대로 장인에서 신진 작가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동한다.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이번 전시에는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및 이수자를 비롯해 현대 작가까지 모두 48명이 참여했다. 전통공예와 회화, 설치, 사진 등 장르도 다양하며 전시 작품만 약 160점에 이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형유산 장인들의 작품과 현대 작가들의 결과물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는 점이다. 전통을 박제된 과거로 바라보지 않고 현재에도 살아 움직이는 문화로 풀어낸다. 수백 년 역사를 품은 낙선재라는 공간 역시 작품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나전과 칠, 금박 등 우리 고유의 기법을 활용해 무형유산 보유자와 포르쉐코리아가 함께 제작한 특별 협업 작품도 이러한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기술에 오늘의 생각을 더하고 새로운 결과물로 만들어냈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이 반드시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히려 시대에 맞게 해석하고 새로운 세대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한 계승의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전시는 K-헤리티지의 현재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래를 가늠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이 모든 과정 속 자동차 회사인 포르쉐코리아가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이제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자동차를 판매하는 회사가 국가무형유산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장기간 지원을 이어가고 우리 장인과 현대 작가들이 한자리에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든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포르쉐코리아는 2022년부터 ‘포르쉐 퓨처 헤리티지’를 통해 국가무형유산을 지원해 왔다. 단발성 후원이나 일회성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어쩌면 포르쉐이기 때문에 가능한 접근일지도 모른다. 포르쉐 역시 헤리티지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자동차 회사에 헤리티지는 그저 과거의 기록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전 세대가 남긴 철학과 기술, 디자인을 존중하고 그것을 오늘의 방식으로 해석해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과정 전체가 헤리티지다.
911이 오랜 시간 기본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진화해 온 것처럼 말이다. 과거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본질을 지키면서 시대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 역사를 가진 브랜드가 자신의 유산을 대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이날 낙선재에서 펼쳐진 풍경은 포르쉐가 이야기하는 헤리티지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과거의 아름다움은 현대의 시선과 만나 또 다른 모습으로 비춰졌다. 오래된 것을 존중하되 거기에 머물지 않고 다음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둘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마티아스 부세 포르쉐코리아 대표는 “포르쉐에게 헤리티지는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꿈과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이라며 “이번 특별전이 오랜 시간 한 길을 걸어온 장인들의 꿈과 여정을 만나고 그 가치가 다음 세대의 꿈으로 이어지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장을 나서며 다시 낙선재 처마 끝을 바라봤다. 여전히 가느다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수백 년을 견딘 고궁 안에는 오래된 기술을 지켜온 장인의 작품과 오늘을 살아가는 작가들의 새로운 시선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수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걸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포르쉐코리아가 한국에서 자동차만 판매하는 회사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가진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며 이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자신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브랜드가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역시 귀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서 진정성도 느껴진다.
헤리티지는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지키고 다듬으며 다음 세대로 이어갈 때 비로소 역사가 된다. 그리고 그 연결을 돕는 일 역시 언젠가는 역사의 일부로 남는다. 보슬비가 내리던 낙선재에서 포르쉐코리아가 그어 놓은 ‘이음의 선’은 그렇게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