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전기차 등록 112% 증가
-성장세, 대중형 전기차·PBV가 주도
-이제 소비자는 기술이 아니라 생활을 산다
냉장고를 살 때 압축기의 구조를 먼저 따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탁기를 고를 때도 모터의 원리보다 얼마나 편리한지가 더 중요하다. 기술은 성숙할수록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올해 상반기 전기차 시장은 그런 변곡점을 보여줬다.

9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전기차 판매 대수는 19만8,969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12.6% 증가했다. 증가 대수만 높고 보면 10만5,401대가 작년보다 더 팔린 셈. 하이브리드마저 판매량이 빠지며 신차 등록 증가 폭이 1만1,322대에 그쳤단걸 감안하면 시장 성장을 전기차가 이끌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건 성장의 주인공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기차 시장은 테슬라 모델Y나 현대차 아이오닉5 등 '상징성'을 가진 전기차가 주도했다. 소비자 역시 새로운 기술을 가장 먼저 경험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기아 EV3(1만8,009대), EV4(7,645대), EV5(1만5,411대)를 비롯해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4,431대), BYD 돌핀(4,511대), 아토3(1,781대) 등 보급형 전기차가 시장을 키웠다. 여기에 배송과 물류, 다인승 시장을 겨냥한 PV5가 PV5 패신저는 2,233대, PV5 카고는 1만1,942대 등록됐다. 이를 모두 합치면 상반기에만 6만5,963대로 올해 전기차 증가분의 약 63%에 해당하는 규모다.

수치는 전기차 시장의 중심축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선택했던 이유가 '새로운 기술'이었다면 이제는 '나에게 얼마나 유용한가'다. 가격 부담을 낮춘 보급형 제품은 첫 차와 세컨드카 수요를 흡수했고 PBV는 배송과 물류, 자영업 등 기존 내연기관 상용차 영역을 전기차로 끌어들이고 있다.
자동차도 처음에는 부유층의 장난감이었다. ABS도, 에어백도, 하이브리드도 처음에는 일부 사람들만 경험하는 첨단기술이었다. 하지만 가격이 낮아지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기능이 되면서 자동차의 '기술'은 어느새 '기본'이 됐다. 전기차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전기차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등록 통계에서도 20대 신차 등록은 전년보다 31.7% 증가해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보조금을 적용하면 3천만원 안팎까지 구매 가능한 보급형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젊은 소비자들의 진입 장벽도 한층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으로의 경쟁도 달라질 전망이다. 주행거리나 출력 경쟁만으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워지고 있다. 대신 합리적인 가격, 공간 활용성, 유지비, 충전 편의성, 그리고 어떤 목적에 얼마나 잘 맞는지가 경쟁력이 된다.

소비자는 이제 배터리 용량이나 모터 출력보다 출퇴근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아이를 태우기에 충분한 공간인지, 장사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따진다. 기술보다 '내 삶에 얼마나 잘 맞는가'가 구매 기준이 되는 것이다.
전기차는 더 이상 미래를 먼저 경험하는 사람들의 선택지가 아니다. 출퇴근을 하고, 아이를 등하교시키고, 물건을 배달하고, 장을 보는 우리의 일상 속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제 전기차는 성능보다 쓸모를 파는 시대다.
냉장고는 더 이상 첨단기술의 상징이 아니다. 생활의 일부다. 전기차도 이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미래를 파는 자동차가 아니라 일상을 책임지는 자동차. 그것이 올해 상반기 판매 데이터가 보여준 가장 큰 변화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