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영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동차 생산이 많은 나라였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영국병(British Diesease)’이 고개를 든다. 단일 공장에 수십 개의 서로 다른 노조가 난립하며 수시로 생산 라인이 멈춰 섰다. 동시에 노조 간부의 한 마디에 라인이 멈추는 이른바 ‘야생마 파업(Wild Strike)’도 비일비재했다. 노조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자동화설비 및 첨단 기계 도입도 온몸으로 막았다. 그 결과 영국 자동차공장의 생산성은 일본과 독일 대비 반토막으로 파괴됐다. 이후 영국 정부는 여러 자동차회사를 합병해 국유화를 선택했지만 비가 와도 쉬어야 한다는 영국병 증상만 더욱 심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영국병을 기회로 삼은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비슷한 시기 철저한 품질 경영과 안정된 노사 관계를 기반으로 영국 자동차산업 규모를 단숨에 추월했다. 노사가 공동 결정체를 조직해 무분별한 파업 대신 장기적 성장과 고용 안정을 선택하며 영국과 다른 길을 걸었다. 그 결과 영국은 자국 브랜드의 멸종을, 독일은 유럽 뿐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게 됐다.
보다 못한 1980년대 영국병을 치유한 인물은 마거릿 대처 전 수상이다. 자동차산업을 민영화하고 가차 없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후 영국은 다시 자동차 생산을 살려내는 데 30년이 걸렸고 2016년에는 172만대를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브렉시트로 생산은 다시 크게 위축됐지만 적어도 영국병의 교훈은 유지됐다.
그런데 이제는 독일이 병에 드는 중이다. 화려했던 독일 제조업의 상징이자 87년 역사를 가진 폭스바겐이 독일 내 4곳의 공장 문을 닫기로 했다. 이때 등장한 단어가 ‘신(新) 독일병’이다. 내연기관에서 EV와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강력한 저항이 문제가 됐다. 동시에 생산 비용은 오르는데 근로 시간은 짧아졌다. 그 결과 독일에서 자동차를 생산할수록 수익성이 떨어졌지만 노조 반발에 산업 재편이 쉽지 않다. 1970년대 영국병이 그대로 독일로 전이돼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이른바 역사의 반복이다.
신 독일병에 이어 최근 한국에도 ‘한국병’이란 명칭이 생겨났다. 고임금에 저효율, 정치와 연계된 연례 파업 등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과거 영국 및 지금의 독일처럼 한국도 막강한 노조의 입김이 비용 상승을 부추기며 생산의 유연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미래보다 현재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과거 영국병을 닮아간다.

증상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중국의 거센 BEV 가격 공세에 저항할 힘이 부족하고 노조는 엄청난 규모의 이익 공유를 요구한다. 이렇게 오른 비용은 다시 자동차에 반영돼 가격을 끌어올린다. 글로벌 시장에 나서며 핵심 가치로 내세웠던 한국차의 가격 경쟁력이 서서히 약화되는 셈이다. 실제 현대차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파업에 돌입했다. 물론 노사 모두 각자의 입장을 고수한다. 노조는 많이 받기를 원하고 회사는 지나친 임금 인상이 경쟁력 저하로 연결된다는 점을 우려한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을 앞세워 점유율을 확대하는 중국 기업과 경쟁하려면 인상 요소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고 맞선다. 그간 15차례 교섭을 벌였지만 서로 원하는 임금 인상의 폭이 다르다.
최근 폭스바겐그룹이 독일 내 4곳의 문을 닫기로 결정한 배경은 이익이 반토막 났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중국 내수에서 비롯됐지만 돈을 벌지 못해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할 수 없다. 이는 곧 기업의 존속 가치와 직결되는 만큼 구조조정을 결정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도 이제는 자동차 미래의 지속 담보를 걱정해야 할 때다. 글로벌 시장 내 소비자 선택이 BEV로 이동할 때 가장 우선되는 항목이 가격인 탓이다. 주력 수익을 HEV가 만들어주지만 HEV는 ICE가 이동하는 것이어서 확장성이 크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만들어져야 할 상황은 이익의 욕심 경쟁이 아니라 한국차의 미래 경쟁력이라는 뜻이다.
박재용 (공학박사, 자동차칼럼니스트)